[개각 후보자 잇따라 사퇴] 與 “시간 끌면 여론 더 악화” 발빠르게 민심 수용
입력 2010-08-29 23:59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여권은 어느 때보다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해 용산 참사와 관련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사퇴 과정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들어가며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청와대에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정진석 정무수석 등 정치인 출신 참모가 대거 포진해 있는 점도 빠른 소통의 배경으로 지적됐다.
◇빠른 여권 의사결정=김 후보자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까지 29일 자진 사퇴한 것은 정치권에서도 뜻밖이라는 반응이 많다. 친이명박계 핵심 의원은 “사퇴 가능성은 있지만 이달 말까지 여론을 보고 다음달 초쯤 가닥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결정이 났다”고 말했다. 이렇듯 청와대가 유례없이 신속한 결정을 내린 데는 한나라당 내 강경 기류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지난 27일 의원총회에서 친이계 의원들이 나서서 김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한 이후 당에서는 총리 임명동의안의 본회의 표결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됐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 초·재선 그룹의 위기감이 컸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수도권 지역 의원들은 하나같이 목 밑에 칼이 들어왔다고 느꼈다”며 의원들의 절박한 심경을 전했다. 수도권의 재선 의원도 “김태호 살리려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민심이 이러니 당으로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당내에서는 “김 후보자는 인준되더라도 언제든 한 방이 나올 수 있고 그때는 정말 레임덕이 올 수 있어 불안하다”는 기류가 적지 않았다. 일부 최고위원들은 이런 당내 기류를 여러 채널을 통해 가감 없이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한다. 결국 청와대도 집권 후반기를 총리 낙마라는 악재로 시작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확실한 반전 카드도 없이 시간을 끌다가 여론을 더 악화시키느니 서둘러 정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당·청 관계 바뀔까=이번 일을 계기로 향후 당·청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핵심 당직자는 “누가 우위냐 하는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이번 과정에서) 청와대가 당의 의견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청와대가 ‘고(Go)’ 하면 당도 따라 간다는 식의 일방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인 당·청 관계 정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나라당 연찬회(30∼31일)에서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 및 개각책임론 등으로 분출될 가능성이 높다. 당·청 수뇌부는 29일 긴급 회동을 가졌다. 당내 기류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임 실장과 정 수석이 안상수 대표, 김무성 원내대표, 원희룡 사무총장을 만나 후보자 사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의 의견을 전하며 당내 분위기 수습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축이 청와대에서 당으로 넘어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자 서둘러 당·청 관계 조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김나래 유성열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