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각 후보자 잇따라 사퇴] 김태호 지명에서 낙마까지… 21일만에 끝난 ‘총리의 꿈’
입력 2010-08-29 18:52
8월 둘째 일요일에 지명됐던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8월 마지막 일요일인 29일 정확히 3주 만에 사퇴했다. 시작은 화려했다. 개각 명단이 발표되자 ‘39년 만의 40대 총리’ ‘여권의 차세대 리더’ 등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중앙정치 무대에 데뷔하기 위해 넘어야 했던 국회 인사 청문회 벽은 그에게 너무 높았다.
민주당 등 야당은 예상됐던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 외에 ‘스폰서’ 의혹, 선거비용 10억원 대출, 부인의 뇌물수수, 불투명한 금전 거래와 재산관리 문제 등을 고리로 전방위 공세를 벌였다. 김 후보자는 이를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한 채 “기억을 더듬어 보겠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다 뒤늦게 시인 혹은 사과를 하는 등 우왕좌왕했다. 특히 그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만난 시점에 대해 “2007년 이전까지 일면식도 없었다”고 했다가 2006년 10월 함께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난 것은 치명타였다. 야당은 물론 김 후보자를 엄호하던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착오가 너무 많다” “정직하지 못하다” 등의 질타가 나왔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 운영과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김 후보자 교체는 불가하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청문회 답변보다 이른 2006년 2월 박 전 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청문회 직후 공개되면서 여론은 더 악화됐다. 여당 내에서도 ‘김태호 불가론’이 확산됐고, 결국 김 후보자는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역대 총리 후보자(총리 서리 포함) 중 중도하차한 경우는 신성모 허정 이윤영 백한성 박충훈 이한기 장상 장대환씨와 김 후보자를 포함해 모두 9명이다.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된 이래 청문회 검증 과정에서 낙마한 총리 후보자는 장상, 장대환씨에 이어 3번째다. 비록 사퇴는 아니지만 1998년 2월 총리로 지명됐던 김종필 전 총리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8월까지 반년가까이 ‘서리’ 꼬리표를 떼지 못하기도 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