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각 후보자 잇따라 사퇴] 金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 트위터에 소회
입력 2010-08-30 00:10
29일 오전 10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개인사무실이 마련돼 있는 서울 내수동 ‘경희궁의 아침’ 건물 1층 로비. 김 후보자는 침통한 표정으로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국무총리 후보직을 사퇴하고 백의종군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사퇴서였다.
그는 사퇴서에서 ‘잘못된 기억’이라는 말을 거듭 언급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만난 시점에 대한 연이은 말 바꾸기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된 점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총리직에 임명된다 해도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삼국지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사퇴의 변으로 인용했다. 사퇴서를 읽은 김 전 후보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건물 밖에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올라 자리를 떠났다. 차기 대선 ‘40대 기수론’의 전면에 나서며 기세등등했던 3주 전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퇴회견 후 그는 트위터에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라는 글을 남겼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어록에 나오는 ‘天要下雨 娘要嫁人 由他去’(천요하우 낭요가인 유타거:하늘이 비를 내리고, 홀어머니가 시집가겠다고 하면 자식으로서 어쩔 수 없다. 갈 테면 가라고 하라)란 문구를 인용한 것이다. 마오쩌둥이 자신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린바오(林彪)가 쿠데타를 기도한 뒤 망명한 사건을 접하고 남긴 말로 ‘어쩔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김 전 후보자가 사퇴 압박 속에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심경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새 총리를 맞을 준비로 분주했던 총리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휴일에도 출근해 있던 총리실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의견을 나누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임채민 국무총리실장은 오전 총리실 간부들을 소집해 후임 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다잡았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