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0-08-29 19:29
(9) ‘너는 내 아들이다’
마가복음 1장과 9장에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에 대하여 중요한 내용이 있다. 마가복음을 읽으며 어렵지 않게 이 점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으로 나오기 얼마 전 아내와 나눈 이야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내는 태중의 아이가 하나님이 주신 ‘우리 아이’라고 확신을 갖고 말했다. 어떻게 되든 출산한다는 생각을 굳히면서 내 마음에도 아이에 대한 생각이 각별해졌다. 아내와 나, 우리 둘의 분신이 자라고 있다. 아이는 아내와 나를 닮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이를 주셨다. 아이와 나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장애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안하지만 이젠 이것까지 끌어안겠다고 생각한 터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아이를 훌륭하게 키운 이런저런 얘기들을 생각했다.
내 기도가 깊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기도했다. 점점 ‘내 아들’이란 생각이 깊어갔다.
마가복음 전체를 읽으면서 예수의 길이 어렵고 험난했다는 것은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로나 인간관계로나…. 사람들이 보통 바라는 것은 거의 갖지 못한 길이었다. 그동안 내가 추구했던 길과는 반대였다. 그러면서 마음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왜 그런 길을 걷도록 세상에 보내셨나? 아들에 대한 아버지 심정으로 보면 예수가 걸은 길은 아버지가 원하는 길이 될 수 없다….’
선배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말한 대로 마가복음 1장과 9장에 하나님과 예수님 관계에 대해 중요한 내용이 나오지. 1장에서는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린 거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예수가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는 때지. 9장에서는 예수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시지. 이 시점은 예수가 당신이 걸어야 할 길에서 마지막 부분 곧 십자가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이야. 1장의 시점과 대비되지. 이때 하나님은 한 번 더 확인해주시는 거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두 곳의 내용은 시점만이 아니라 물리적 장소에서도 대비되지. 1장은 물이고 9장은 산이야. 물은 가장 낮은 곳을 뜻하고, 9장에서는 특별히 ‘높은 산’이라고 표현돼 있어. 예수는 가장 낮은 곳에서나 가장 높은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야. 말하자면 사람 몸을 입은 예수가 사회적으로 어떤 자리에 있든지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야. 예수의 존재에서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점이야. 이게 예수의 자기정체성에서 심장이야. 생각해 봐. 너도 말했지만 예수가 걸은 길은 아버지가 아들한테 권할 길이 전혀 아니야. 그 정도로 어렵게 살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하나야. 그 모든 어려움보다 훨씬 더 커다란 어떤 가치나 목적이 있는 경우야. 자기 삶에 대해, 자기 존재에 대해 아주 뚜렷한 인식이 있다는 말이지. 그게 사명이고 소명이야.”
선배의 열강은 계속되었다. 선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란 주제를 설명하면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토해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중요한 자기 정체를 잊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구조에서 이런저런 직분과 직책에 대한 헤게모니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삼청동 찻집에서 일어나며 나는 마가복음에 대해 계속해서 조언해 줄 것을 선배에게 요청했다.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