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아동기 훈육으로 막을 수 있어”… ‘반사회적 인격장애’ 분석

입력 2010-08-29 17:52


유영철, 강호순, 김길태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악범들에게는 공통된 키워드가 있다. 연쇄 살인, 무책임, 비양심, 거짓말 등으로 드러나게 된 반회적 이상 행동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속칭 ‘사이코패스(Psychopath)’ 또는 ‘소시오패스(Sociopath)’로 불리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ASPD)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흔히 ‘양복을 입은 뱀’으로 묘사되는 ASPD, 그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선천적 뇌 기능 이상 및 후천적 교육 환경의 영향=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ASPD와 관점이 다를 뿐 엄밀하게는 같은 용어다. 모두 1800년대 ‘모럴 인새너티(Moral Insanity)’, 즉 패덕광(悖德狂)으로 불린 정신적 광기를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대 의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과 송후림 교수는 “아직까지는 혼용되고 있지만 점차 ASPD로 정리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ASPD 성향을 보이는 사람은 의외로 적지 않다. 미국 심리학자 마사 스타우트 박사는 자신의 저서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산눈)에서 “연쇄살인범의 90%, 미국 전체 인구의 약 1%가 이 같은 성향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전 인구의 약 1% 정도로 추정된다.

발병 원인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타고난(선천성) 요인과 길러진(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타고난 요인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과 벌에 의한 학습을 통해 도덕적 틀을 형성하는데 관여하는 뇌 속 편도체의 이상으로 발생한다. 편도체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 충동성이 증가하고 좀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며 두려움이 없는 성격의 소유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반면 길러진 요인이란 이런 성향에 어릴 때 겪은 공격 학대 폭력 착취 등과 같은 경험이 덧붙여지는 경우를 가리킨다”고 조언했다.

◇ASPD 환자는 양심이 실종된 사람들=연구결과 ASPD 환자들은 자제심, 양심, 도덕성 등 통제 기제가 취약해 순간적인 충동으로 반도덕적,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경향이 강하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정석훈 교수는 “한 마디로 양심이 없는 사람이 바로 ASPD 환자”라며 “평소에는 이성적인 데다 오히려 내성적이고 얌전하기까지 해 심지어 가족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두 얼굴로 사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현재 ASPD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 정신과 전문의들마저 ASPD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치료보다는 교도소가 해결책이라고 말할 정도다. 잃어버린 양심을 되찾아주면 될 텐데, 의학계는 아직 이 양심을 키울 도구를 찾지 못했다.

송 교수는 “의학적으로 볼 때 ASPD의 약 70%는 타고난 심성이 고약하고 냉혹한 사람들이라 평생 이기적이고, 이른바 못된 사람으로 살아가긴 해도 어릴 때 훈육을 잘 받을 경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진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ASPD의 발현을 막으려면 우선 출생 후 도덕적 기준이 정립되는 12세 이전까지 싸움, 규칙위반, 도벽, 거짓말 등을 금하도록 철저히 지도하는 게 중요하다. 일단 성인으로 자란 다음에는 어떤 약물로도 ASPD 성향을 제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ASPD를 판정하는 방법도 있다. 캐나다 범죄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 박사가 만든 ‘PCL-R 테스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총 20가지 항목에 걸친 설문조사 형식으로, 항목별로 ‘전혀 그렇지 않다’에서 ‘정말 그렇다’에 이르기까지 0∼2점을 부여해 합산하게끔 돼 있다(그래픽 참조).

40점 만점 기준 미국은 30점 이상, 우리나라는 24점 이상이면 ASPD로 평가한다. 범죄 경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의 경우 5점 내외, 일반 범죄자는 22점, ASPD 환자는 평균 30점 이상을 받는다. 강호순은 경기경찰청 범죄분석팀의 두 차례 검사에서 각각 27점과 28점, 유영철은 39점을 기록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