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손숙 ‘관록’의 하모니…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입력 2010-08-29 17:43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흑인 운전기사와 백인 할머니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72세의 데이지 부인(손숙 분)은 형편없는 운전실력 때문에 이웃집 울타리를 망가뜨리는 큰 사고를 낸다. 결국 그의 아들 불리는 60대 흑인 운전사 호크(신구)를 고용하게 된다. 하지만 고집 센 데이지는 혼자 모든 걸 해결하겠다며 호크의 친절을 거부한다. 하지만 이내 호크의 인간적 모습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두 사람은 인종을 넘어 친구로 남게 된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종차별이다. 미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인종차별을 넘어서는 인간애가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에게 흑백간 인종차별 문제는 아무래도 남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이야기를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각색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럼에도 이 연극은 정공법을 택했다. 신구는 흑인 분장을 하고 말투와 몸짓까지 흑인 흉내를 낸다. 깐깐하고 도도한 백인 할머니로 변신한 손숙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분장을 해도 한국인에게서 흑인과 백인의 느낌까지 바라는 건 무리다.

자칫하면 무모한 도전이 될 뻔한 이들의 변신은 관객에게 잔잔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는 감동을 선사했다. 두 배우의 관록이 묻어나는 연기 덕분이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극적인 사건 없이 잔잔하게 시종 진행된다. 지루할 수 있는 1시간 40분 동안 관객을 미소 짓게 하는 것도 두 사람의 공이다.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인종 간의 문제보다 오랜 시간 곁에서 자리를 묵묵하게 지켜주는 따뜻한 우정에 방점이 찍힌다.

호크에게 잔뜩 경계심을 갖고 있는 데이지는 시종 그에게 까칠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열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까막눈인 호크를 위해 글을 배울 수 있는 책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면서도 “난 크리스마스 선물은 안 해요. 아이들 가르치다 남은 책이 있어서 주는 것 뿐이예요”라면서 냉정한 척 한다. 주로 냉정하고 차가운 역할을 맡아왔던 손숙은 겉으론 차갑지만 마음 속으로는 호크를 의지하는 연약한 데이지의 모습을 부드럽게 표현해 냈다.

신구는 데이지의 까칠함을 넉살좋은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호크의 넉넉함으로 무대를 감싼다. 극 후반부에 호크가 치매에 걸린 데이지를 찾아 케이크를 손수 떠먹여주는 장면은 극장 전체를 따뜻한 온기로 채워줄 만큼 흐뭇한 장면이다.

무대는 아쉬웠다. 가장 핵심적 무대장치인 자동차는 더욱 그랬다. 적어도 차의 외형적인 형태정도는 갖춰주는 게 나을 뻔 했다. 관객이 보는 건 의자와 핸들 뿐. 문을 여는 시늉을 하며 차에 타는 모습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25년간의 시간 흐름을 잦은 암전으로 표현한다. 암전 때마다 기타와 피아노 선율이 어두운 극장을 채운다. 음악은 아름답지만 암전이 너무 자주 있어서 보기에 따라 불편함을 줄 수 있다. 9월 12일까지 명동예술극장(1644-2003).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