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방중] 카터 방북으로 이목 집중시킨후 ‘정은 세습’ 대내외 공식화 의도

입력 2010-08-27 18:05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목적이 후계 구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면서 김 위원장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무시한 채 중국을 깜짝 방문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후계자로 알려진 3남 김정은 세습을 둘러싸고 내부적으로 이견이 표출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나 가능성은 낮다. 이보다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김정은 세습을 대내외적으로 공식화하려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특히 이번 방중은 오는 9월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후계자로 전면 등장하고, 이어 중국이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이 짙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27일 “지난 5월 방중 때는 경제 지원 및 천안함 사태가 대화의 핵심이었고, 후계 구도와 관련해서는 깊이 있는 교감이 없었다”며 “김정은 세습 후계 체제가 가시화 단계에 들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월 방중과 달리 이번 방중에는 김정은이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중국 현지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이 동행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또 지난 방중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한 경제 지원을 다시 요청해 후계 체제의 안정화를 꾀할 가능성이 높다. 신의주 물난리 등으로 인해 민심이 악화된 만큼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원조 등 선물 보따리를 받아와 풀지 않는다면 후계 구축 작업이 원활치 않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김정은과 함께 동북 3성의 항일유적지를 방문함으로써 ‘김일성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후계자 김정은의 정통성을 세우려는 의도도 담겼다는 분석이다. 고(故) 김일성 주석의 심복이었던 최영림을 지난 6월 내각 총리에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것은 북·미 관계보다는 후계구도 구축과 북·중 유대강화에 전략적 우선순위가 있음을 알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카터 전 대통령이 제네바 협약을 이끌어냈던 1994년과 비교할 때 특별한 실권이 없고,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내심 인질 외교를 우려하며 “미국 정책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북한과 미국은 카터 전 대통령을 6자 회담이나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서로의 의사를 간접 타진해 보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활용한 셈이 됐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