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金 父子 방중 권력세습 신호탄인가
입력 2010-08-27 17:56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목적에는 권력세습을 위한 의례(儀禮)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방문 첫날 김일성이 다닌 지린시 위원중학교와 ‘김일성 항일 유적지’라 주장하는 베이산공원을 찾은 것은 북한권력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한 성지순례다. 후계자로 유력시되는 셋째 아들 김정은을 데리고 간 것은 그를 이른바 ‘혁명 전통’의 계승자로 인증하겠다는 뜻이다.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부부가 동행한 것 역시 ‘김씨 조선’의 핏줄끼리 치르는 신성한 행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봉건 왕조에서나 있을 3대 권력세습의 실체가 일단을 드러낸 것을 보면서 한 민족으로서 참괴함을 금할 수 없다. 휴교령이 내린 위원중 학생들이 김정일 부자를 ‘큰 뚱뚱이, 작은 뚱뚱이’로 부르며 “김정일 장군님, 우리에게 휴가를 주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야유한 게 바로 천하의 민심이다.
미국인 억류자를 데려가라는 초청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그 시각에 김정일은 전용열차를 타고 중국을 향하고 있었다. 전직 미국 대통령쯤은 얼마든지 희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북·미 관계도 ‘우리 식’으로 하겠다는 신호다. 북한이 이런 식이라면 6자회담 재개도 기대하기 힘들 뿐더러 미국도 금융제재를 완화할 명분을 얻기 어려워졌다.
중국 지도부가 김정일 부자를 맞아 권력세습을 인정하는 형식이 된다면 이 또한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다. 천안함 사건에서 빤한 진실을 알고도 눈을 감은 중국이 권력세습까지 맞장구를 친다면 G2 국가로서 체모가 말이 아니다. 어린 핏줄에게 권력이 세습될 경우 북한 체제가 안정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은 집단지도체제를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중국이 가장 잘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 부자의 성지순례로 북한 권력은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로 이행이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시기다. 정치권 일각에서 대북 특사를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대북 정책 역시 섣불리 변화를 주기보다 앞으로 전개될 북한의 권력이행 과정을 신중하게 지켜보며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