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달라져야 게임에 빠진 애들 책을 가까이해요”
입력 2010-08-27 17:36
“엄마가 달라졌습니다. 더위 때문일까요. 예전의 엄마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확 바뀐 것은 7월 중순이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느냐고요. 지금부터 들어보실래요?”
송인원(14·서울 상계제일중 1)·인준(13·서울 상계초 6) 형제는 “요즘 다른 엄마와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엄마 한동순(50·서울 상계 3·4동)씨는 “엄마가 바뀌니 아이들도 달라지더라”며 활짝 웃었다.
인원 형제는 또래들처럼 게임을 할 때면 맛있는 자장면이 밥상 위에서 불어터져도 나 몰라라 열중하곤 했다. 공부는 뒷전이고 컴퓨터에 코박고 있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게임 그만 해라!’는 잔소리를 하다 끝내는 ‘당장 컴퓨터 꺼!’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곤 했다. 이런 풍경은 인원이네 집뿐만이 아니니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
인준이는 “엄마가 컴퓨터 당장 끄라고 소리 지르는 일이 없어져 좋다”고 했다. 게임을 하다가 끝내려면 저장을 해야 하는데, 금세 끄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는 엄마. 그동안 아이들은 속으로 늘 투덜댔다. ‘엄마는 뭘 몰라!’. 인원이는 “게임을 절대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지 않아서 신난다”고 했다. 밥 먹는 것보다 일상화된 게임을 아예 하지 말라니 아이들은 짜증이 날밖에. “엄마는 정말 뭘 몰라도 한참 몰라!” 요즘은 절대 투덜대지도 짜증도 내지 않는다. 그럴 일이 없어졌다.
컴퓨터를 긴 테이블에 놓은 채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는 이들 형제는 “엄마가 요즘은 게임 내용을 일일이 물어보신다”고 했다. 인원이는 “그래서 엄마 잔소리가 좀 길어지긴 했다”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인준이는 “성인용이나 폭력적인 게임은 절대 못하게 하시지만 다른 캐릭터 게임이나 축구 게임은 1시간30분쯤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다”고 자랑했다.
한씨가 ‘게임은 무조건 안된다’에서 ‘폭력적인 게임은 안된다’로, ‘1시간만 해라’에서 ‘1시간30분 정도는 좋다’로 바뀐 것은 학부모정보감시단에서 하는 ‘디지털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 파워 메이킹’ 특강을 듣고 나서였다. 아이들이 다니는 상계 3·4동 나움터 공부방 학부모들이 단체로 들었다. “디지털 자녀에게 게임은 놀이문화이므로 무조건 못하게 해선 안 되고 올바르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라고 하더군요.” 그는 특강을 들으면서 온라인 게임도 직접해봤다. 1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 만큼 재미있었다. 그래선가 컴퓨터 켜고 게임 연결하고, 끝날 때 내용 저장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한씨는 “그런데 달랑 1시간만 하라고 하면서 그것도 계속 잔소리를 하니 아이들은 감질이 나고, 그래서 더욱 게임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하루 대여섯시간씩 하던 게임을 이렇게 팍 줄인 인준이 형제가 나머지 시간에는 무엇을 할까. 책을 읽고 있다. 한씨는 “한달쯤 서서히 게임시간을 줄인 뒤 지난주부터 책읽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독서를 하라’고 다그치는 대신 책을 읽으면 ‘특별 용돈을 준다’는 감언이설(?)로 한씨는 “아이들을 꼬셨다”고 했다. 그리고 한씨가 먼저 책을 들었다. 슬슬 눈치를 보던 아이들은 책을 한 권씩 들고 책 읽는 엄마 옆으로 왔다. 특별용돈 때문에 책을 잡긴 했지만 게임만 하던 아이들인만큼 책장 넘기는 손이 재빠를 수 없다.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한씨는 “하루 3페이지만 읽자”고 했다. 책을 읽으면 ‘인원·인준 칭찬표’에 ‘○’를 쳐주고, ○ 숫자에 따라 특별용돈을 월말에 줄 예정이다.
인원이는 “물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독서를 하면 아무래도 국어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인준이는 “말 잘하는 방법을 쓴 책을 읽고 있는데 개학하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즐거워 했다.
학부모정보감시단 이경화 대표는 “부모가 게임에 대해 부정적이고 통제가 심할수록 자녀는 자아존중감과 자기통제력을 잃어 더욱 몰두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부모들은 자녀가 하는 게임의 특성을 파악한 뒤 그 게임을 주제로 자녀들과 대화를 시작하라”면서 “연령에 맞는 게임을 하도록 이끌고, 게임의 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는지 관심을 가지면서 지나치게 게임에 빠지지 않도록 시간관리를 해주라”고 당부했다. 자녀가 하는 게임특성은 그 게임의 사이트, 또는 게임물등급위원회 홈페이지(www.grb.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학부모정보감시단은 학교,지역아동센터,복지관 등을 대상으로 학부모특강 2차 교육 신청을 받고 있다‘02-706-4452’.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