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합동 ‘제비뽑기 선거제’ 10년, 존치-수정-폐지 3각 논란

입력 2010-08-27 17:33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총회장 서정배 목사)의 제비뽑기 선거 제도는 2001년 86회 총회에서 부정선거를 막고 교단 대표를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해를 거듭하면서 이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자 교계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이 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교회에서 시무 20년 등 임원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후보가 될 수 있어 후보가 난립하고, 임원 후보에 대한 검증절차조차 부족해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선출될 수 있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또 임원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뒤 담합을 통해 후보 단일화를 이루는 사례도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예장 합동 정기총회는 ‘직선제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게 됐다. 그러나 554표 중 찬성 254표, 반대 307표로 직선제는 부결됐었다. 26일 오후 서울 개봉동 남현교회(이춘복 목사) 비전홀에서 ‘총회 임원 선거 제도’ 공청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공청회는 제비뽑기 선거 제도의 존치론, 수정보완론, 폐지론으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존치론=“저는 임원 후보에게 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바로 돌려주었지요. 문제는 평소 알고 지내던 후보들을 고발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배재근 천호동원교회 목사는 제비뽑기 선거제도의 존치를 주장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선거 때 돈을 주고받았어도 알고 지내는 사이이거나 인정 때문에 고발하기 힘들다는 것. 배 목사는 “사회나 국가처럼 벌칙을 강화하면 금권선거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교단에선 거의 불가능하다”며 직선제 대신 제비뽑기 유지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사회는 사법권이 있어 가능하지만 교회는 사법권이 없을 뿐 아니라 교단은 학연 지연 등으로 이뤄지는 까닭에 돈을 받지 않으면 상대방을 지지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그동안 형성한 인간관계까지 단절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제비뽑기 선거 제도가 폐지되면 곧바로 금권선거로 이어지고 혼탁한 금권선거를 막을 방법이 딱히 없다고 전망했다.

제비뽑기가 민주주의에 위배된다는 반론에 대해 배 목사는 “제비뽑기 선거 제도의 기원은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그리스 아테네”라면서 “이러한 추첨 제도는 선거전이 불필요하고 막대한 선거 비용이 들지 않으며 투표(직선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교단 분열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치적 힘으로 총회를 농단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수정보완론=박현식 대길교회 목사는 선거인단을 제비뽑기로 압축하고 선거인단이 직접 투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방안은 누가 선거인단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전 선거 운동과 금권선거를 막을 수 있고 또 지도력을 갖춘 적합한 인물을 투표로 선발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박 목사는 강조했다. 또 선 투표 후 제비뽑기, 선 제비뽑기 후 결선투표 방안을 제시했다.

박 목사는 지도력 부재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팀 러닝메이트’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또 총회 지도층의 인물 부재 또는 편중 현상을 막기 위해 갈라먹기식 정치, 지역 집단의 편가르기 철폐뿐 아니라 유권자에게 돈을 건넨 후보는 40배의 벌금을 물게 하고, 입후보자가 내는 총회 발전기금을 인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목사는 “아무리 좋은 제도와 기구, 방법론을 강구해도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우리의 의식 자체가 성숙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한국교회 일원으로서의 자긍심과 반성하는 자세가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폐지론=정준모 대구성명교회 목사는 제비뽑기 선거 제도는 오히려 ‘비성경적’이라고 했다. 제비뽑기는 구약시대 결원 중인 사도를 뽑기 위해 사용됐던 한 방식일 뿐 결코 일꾼을 뽑을 때 사용할 보편성을 둔 명시적 명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장로교 대의정치에 반하며 검증되지 않은 후보가 난립하고, 후보 난립을 막기 위해 기탁금이 올라가게 되는 등 결국 돈의 힘이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지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당선되기 때문에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정 목사는 “제비뽑기는 총대들의 고유권한인 주권을 포기해서라도 타락선거를 막아야 된다는 안타까운 현실과 미성숙한 교단 선거 풍토를 반영할 뿐”이라며 “헌법과 개혁주의 전통대로,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방식으로 속히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예장 합동 총회의 목회자와 장로들은 대부분 현행 제비뽑기 선거 방식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제비뽑기 방식의 큰 틀은 유지하되,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 가장 우세했다.

예장 합동 총회 규칙부가 지난 5월 5일부터 8월 13일까지 소속 목회자와 장로 1678명을 대상으로 총회 임원 선거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중 574명(34.2%)은 ‘종래와 같이 제비뽑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중 908명(54.1%)은 ‘제비뽑기 방식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제비뽑기를 폐지하고 직접선거제도(직선제)를 도입하자는 입장은 193명(11.5%)에 불과했다.

글=유영대 기자, 사진=신웅수 대학생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