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병탄 100년’ 고종황제 비자금 행방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 자금 규모·흐름 추적
입력 2010-08-27 18:17
1949년 서울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푸른 눈의 외국인이 숨을 거뒀다. 고종황제의 외교 고문이자 비밀특사였던 호머 헐버트 박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는 본인의 바람대로 한국 땅에 묻혔다.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헐버트 박사가 평생을 걸쳐 추구한 목표를 다 이룬 것은 아니다. 황실 비자금인 내탕금을 찾아오라는 고종황제의 소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헐버트 박사는 40여년을 내탕금의 행방을 쫓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고, 비자금 환수는 후손들에게 과제로 남겨둬야 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고종황제의 내탕금을 추적한 ‘강제병탄 100년-고종황제의 비자금은 어디로 갔는가’를 28일 오후 11시10분에 방영한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비자금을 숨겨둔다. 하지만 고종은 독립 운동과 국가의 선진화를 위해 비자금을 모아뒀다. 일본과 중국보다 먼저 전기가 설치된 건천궁은 고종의 내탕금으로 만들어졌다. 1899년 설립된 대한천일은행도 고종이 쾌척한 3만원이 종잣돈이 됐다. 고종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을 만들 때도 흔쾌히 내탕금을 내주었다.
“그동안 역사는 고종황제가 나약하고 무능한 군주라고 합니다. 하지만 고종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분이고 해외에서도 고종의 업적을 높게 평가합니다. 보통 비자금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사용되는데 고종은 자신이 아니라 민족독립, 자주 외교를 위해 내탕금을 마련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태현 PD의 말이다.
1890년 10월 고종은 비밀특사인 헐버트 박사를 은밀히 불러 중국 상하이 독일계 덕화은행에 예치된 51만 마르크를 찾아 미국으로 옮기라는 지시를 내린다. 현재 가치로는 250억원에 해당하는 이 돈은 당시 대한제국 총세입의 1.5%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그러나 헐버트가 상하이에 도착했을 때 그 돈은 이미 일본이 전액 인출해간 후였다. 도대체 일본은 어떻게 거액의 돈을 빼 갈 수 있었을까.
김 PD는 “예치금의 존재를 눈치 챈 이토 히로부미 등 일본인들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흔적이 있다”며 “인출동의서에 찍힌 고종의 어쇄가 진짜 고종의 동의하에 찍은 건지, 일본제국이 친일대신을 앞세워 고종의 돈을 빼낸 게 아닌지 취재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돈의 규모와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독일,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을 돌았다. 한 달 간 백방으로 취재했지만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서인지 단서를 찾기가 어려웠다. 제작진은 “1940년대 헐버트 박사가 내탕금 문제를 제기했을 때 우리가 그 문제에 집중했더라면 자금 환수가 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김 PD는 “1940∼50년대는 한국전쟁 때문에 이 문제가 흐지부지됐다. 2008년에 정부가 독일 은행을 찾았지만 이미 100년 전 일이라 자금의 존재를 증명하는 문서를 찾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는 “민족 정기를 되찾는다는 차원에서라도 내탕금을 단돈 1원이라도 반드시 돌려 받아야 한다”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