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가난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중년 시인의 조용한 번뇌
입력 2010-08-27 17:31
“이제 모든 청춘은 지나갔습니다 덥고 비린 사랑놀이도 풀숲처럼 말라 주저 앉았습니다 세상을 굽어보고자 한 꿈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안 것도 겨우 엊그제 저물녘, 엄지만한 새가 담장에 앉았다 몸을 피해 가시나무 가지 사이로 총총히 숨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난 뒤였습니다” (‘11월’ 일부)
생이 어느덧 지는 해처럼 서쪽을 향해 있을 무렵. 시인 장석남(45·사진)이 여섯 번째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창비)를 냈다. 스물두 살에 등단한 시인도 어느새 불혹을 훌쩍 넘겨 황혼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등단한 이후 짙은 서정성과 아름다운 언어로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주목받아온 시인이지만, 해가 서쪽으로 가듯 시간이 흐를수록 속세의 삶에 대한 번민은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시집에는 생활인으로서의 비애와 부끄러움, 죄의식이 곳곳에 짙게 깔려 있다. 그동안 담보해 온 시의 고전적인 서정성과 함께.
“나는 은둔자/산 속에 가만히 가부좌를 하고/별을 헤듯 돈을 센다/지적도를 보고 땅값을 계산하고/구약을 조금씩 읽으면서도/돈을 센다/돈은 나를 센다”(‘은둔자’ 부분), “이 문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자가 너무 많다/이 문으로 들어설 수 없는 자가 너무 많다/이 문으로 들어오고 싶지 않은 자가 너무 많다”(‘대문’ 일부)
떨쳐내기 힘든 생각의 가닥 속에서도 여전히 흐드러진 감수성과 곳곳에 배어 있는 유머, 번민을 똑바로 응시하는 시선은 장석남의 시를 올곧고도 유연한 것으로 만든다. 시인은 스스로가 세속에 물든 인간임을 자인하지만, 거울과도 같은 투명한 언어와 깊은 사유는 그의 시를 완성해내는 힘이다. 시집 발문을 쓴 극작가 최창근은 “스스로 마련한 도덕적인 거울을 통해 자신이 타락해가는 과정을 보는 한 사내의 곱고 조용한 내면에 죄의식이 깃들지 않을 리 없다”면서 “자기 안에 깃든 유한함을 자각하고 자기의식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만이 진실로 부끄러움을 사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변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경솔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가난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돈과 성욕을 흘리지 않으려”(‘변기를 닦다’ 일부) 애쓰는 시인의 조용한 번뇌가 늘 흐느적거리던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깨운다. 장석남은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간격이 늪만 같다”고 말한다. 지기 전 해가 문득 붉고도 말간 얼굴로 세상을 들여다볼 때, 하루가 가는 처연함처럼 시는 거기 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