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세미테크 상장폐지 파장… 허술한 ‘우회 상장’ 심사가 결국 화근

입력 2010-08-26 18:55

하루 사이 3941억원이 증발했다. 지난 23일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가 결정된 태양광장비업체 네오세미테크는 정리매매 이튿날인 26일에도 주가가 급락했다. 4983억원이던 시가총액은 정리매매 첫날 142억원으로 쪼그라들더니 이날 91억원으로 또 줄었다.

네오세미테크 소액주주 7287명 가운데 한 명인 A씨. 그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이 회사에 2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갖고 있던 주식이 순식간에 ‘휴지조각’으로 전락한 상황을 지켜보는 심정은 참담할 뿐이다. 하지만 회사가 시장에서 퇴출되기까지 과정을 생각하면 더 울화가 치민다.

그는 “투자자들이 하루아침에 4000억원 가까이 손실을 볼 게 뻔한데도 회계법인과 금융당국 등은 정해진 규정대로만 회사를 ‘처리’했다”면서 “외양간(우회상장제도) 고치기 전에 소(회사)부터 살리면 안 되느냐”고 되물었다.

비상장사였던 네오세미테크는 지난해 10월 상장사인 모노솔라와 합병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우회상장했다. 주가가 치솟으며 한때 코스닥기업 서열 13위에 올랐다. 그러나 다섯 달 뒤 합병으로 새로 바뀐 D회계법인이 2009년 실적을 감사하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네오세미테크 오명환 대표이사의 분식회계가 드러난 것. D회계법인으로 바뀌기 이전에 I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았으나 오씨의 분식행각은 발견되지 못했다. D회계법인은 감사보고서에 상장폐지의 사유가 되는 ‘감사의견 거절’을 적었다.

네오세미테크는 한국거래소로부터 3개월의 개선기간을 얻었다. A씨는 “회사에서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대표가 거짓으로 꾸민 장부만 있는 그대로 되돌리면 상장유지가 될 것으로 믿었다”며 “D회계법인도 감사의견을 ‘적정’으로 바꿀 것처럼 얘기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D회계법인은 재감사 후 또 ‘감사의견 거절’을 적었다. 한국거래소는 즉각 상장폐지 결정을 내렸다. 거래소 관계자는 “회계법인이 감사의견 거절을 내면 규정상 상장폐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회계법인은 감사의견을 바꿀 경우 통상 금융당국의 감리를 받게 돼 우리(투자자)를 외면한 것 같고, 거래소는 규정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며 “모두 뒷짐만 진 채 몸을 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울먹였다. 투자자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호 장치가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와 관련 “회계가 부실한 회사를 심사에서 거르지 못한 부분은 잘못이 있다”면서도 “우회상장 심사를 깐깐하게 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고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채이배 연구위원은 “네오세미테크 사태의 본질은 애당초 이 회사 대표의 분식회계를 잡지 못한 I회계법인에 있고, 2차적으로는 우회상장 시 형식심사에 그친 금융당국에 있다”면서 “피해 발생 후 회계법인 등에 대해 사후 책임을 무겁게 물을 수 있는 투자자 보호절차가 제대로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