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정일 급거 訪中 심상치 않다

입력 2010-08-26 19:05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어제 새벽 전용열차로 국경을 넘어 중국 땅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를 데려오기 위해 평양을 방문해 있는 때다. 지난 5월 초 베이징을 방문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이뤄진 방문이어서 의미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다만 지난 16일 우다웨이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의 평양 방문과 이번 방중이 관련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이례적 방중을 두고 북한 정세에 중대한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해 볼 수 있다. 후계자 논의가 그 하나일 수 있다. 9월 초 소집되는 노동당 대표자회를 앞둔 시점이다. 대표자회에서는 김정일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셋째 아들 김정은이 공식 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럴 경우 중국으로부터 3대째 권력세습을 인정받기 위한 책봉(冊封) 방문이 된다. 최근 신의주 지역의 수해를 계기로 특별 지원을 요구하려는 목적도 포함될 수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연합훈련 등 군사적 압박이 강해지자 중국과 군사동맹을 강화할 필요성도 생겼다. 우다웨이 대표가 방북한 직후인 만큼 북핵 문제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만났던 카터를 억류자 석방을 위한 사절로 초청한 것은 미국 정부에 모종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김정일의 방중 일정으로 미뤄볼 때 카터와의 면담은 불가능했다. 김정일의 방중 동선이 과거처럼 신의주에서 단둥을 통한 것이 아니라 자강도 만포에서 중국 지안으로 넘어간 것도 의외다. 관측은 관측일 뿐 진상이 알려지려면 다소간의 시간이 걸릴 터이다.

우다웨이 대표가 평양에 이어 어제 서울을 방문하는 등 한반도 상황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천안함과 북핵 분리 대응으로 입장 전환을 검토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북한이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는 상황에서 명분이 약하다. 북·미 간 직접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우려된 카터 방북도 김정일 면담이 불발됨으로써 외교적 의미는 소멸했다. 우리로선 기존 대북 원칙을 견지하면서 상황 전개를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