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혼혈 소녀와 김순자 할머니의 일기장… ‘김찰턴순자를 찾아줘유!’
입력 2010-08-26 17:30
김찰턴순자를 찾아줘유!/원유순 글·박윤희 그림/주니어랜덤
민정이는 가무잡잡하고 빛나는 피부에 깊고 쌍꺼풀 진 눈, 도톰한 입술이 매력인 초등학교 5학년이다. ‘섹시소녀’로 불리는 민정은 노래까지 잘 불러 학교에서 인기만점의 스타다. 어느 날 병원에서 퇴원해 민정의 방에 머물게 된 증조할머니는 실성한 듯 중얼거린다.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순자야, 순자야.”
아빠는 그런 증조할머니를 증오하며 무례하게 대한다. 하지만 식구들은 증조할머니가 한국전쟁 당시 흑인병사에게 겁탈 당해 할머니 김순자를 낳았고, 할머니 김순자는 20대에 아빠를 낳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빠, 우리 할머니 이름이 순자야?” “너한테 할머니는 없어.”
할머니는 흑인 혼혈을 바라보는 사회의 냉혹한 시선을 견디지 못해 가출을 했고 아빠 역시 사회의 냉대를 받으며 자랐던 것이다. 아빠의 꿈도 가수였으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해 꿈을 접고 공장을 전전하지만 그마저도 잘 적응하지 못한다. 결국 죽음을 앞둔 증조할머니의 뜻에 따라 가족들은 사라진 김순자 할머니를 찾기로 한다.
민정은 아빠 엄마와 함께 증조할머니가 살았던 시골에 내려가 케케묵은 옷가지와 교과서, 노트 등을 태우고 정리하며 과거는 지나갔고 새 시대가 열렸음을 느끼게 된다. “5학년 김순자. 제법 반듯한 글씨였다. 김순자 할머니의 일기장이라니. 뜻밖이었다. 자석에 이끌리듯 일기장을 넘겼다.”
어느 날엔 할머니가 영화 벤허에 나오는 찰턴 헤스턴처럼 멋진 배우가 자신의 아버지였으면 좋겠다며 이름을 ‘김찰턴순자’라고 쓴 일기도 있었다. 민정은 순자 할머니가 돌아오기를 꿈꾸며, 더 이상 혼혈이 아무런 상처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순자 할머니가 우리 가족으로 이미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할머니 일기장을 소중하게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언젠가 일기장의 주인을 만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한국전쟁에서 시작되어 4대에 걸쳐 민정이네 가족을 괴롭혀온 혼혈의 문제가 일기장 하나로 풀려가는 이 동화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배려를 환기시켜준다. 순자 할머니의 전쟁은 4대에 걸쳐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는 자신의 혈관에 흐르는 피와 마침내 화해하게 된 민정의 따스한 마음이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