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938일이나 되는 마을을 아십니까… ‘꿀과 연기 냄새가 나는 소녀’
입력 2010-08-26 17:29
꿀과 연기 냄새가 나는 소녀/셰인 존스 지음/김영선 옮김/세계사
마치 긴 꿈을 꾼 듯한 느낌이다. 꿈속. 이것은 나의 꿈인가, 계절의 꿈인가. 무의식이 기호와 상징을 통해 발현된다. 사실과 은유가 혼재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적 묘사이고 어디까지가 은유인지 모호하다. 메타포로 읽은 것이 사실이 되고 사실로 여긴 것이 메타포로 바뀌는 반전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메시지도 스토리 라인도 선명하지 않은 이 책은 그래서 우화다. 자유와 억압의 대립, 창조와 파괴의 대비가 손에 잡힐 듯하다 사라진다.
지구상의 알려지지 않은 마을에 2월이 머물고 있다. 2월이라는 주인공은 무려 938일동안 마을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열기구와 연, 새 등 모든 나는 것을 금지시킨다. “하늘을 나는 모든 것에 종말을 고해야 한다는 글이 적힌 양피지가 떡갈나무에 못으로 박혀 내걸렸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떡갈나무에 둘러서서 글을 읽었다. 숲 속에서 신음하는 듯한 나팔소리가 들렸다. 새들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졌다.”(10쪽)
계속되는 겨울은 마을 사람들의 희망과 미래까지 얼어붙게 만들고 저항하는 자는 더욱 고통을 당하게 된다. 새디어스는 2월의 억압에 저항해 전쟁을 일으키지만 저항이 강해질수록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 딸 비앙카의 실종이 그것이다. 딸을 그리워하는 새디어스의 마음은 시적인 문장에 실려있다. “나는 지붕으로 올라가. 아래로 네 침대가 보여. 나는 한쪽 눈을 감고 손을 쭉 뻗어 지평선을 찢어. 그리고 낡은 벽지를 뜯듯이 하늘을 내쪽으로 잡아당겨. 오리털 이불이 있는 침대에서 자고 있는 네가 보여. (중략) 네가 언덕에서 기다리는 엄마쪽으로 열기구를 보내려고 하늘을 밀 때는, 하늘이 마치 구겨진 벨벳처럼 느껴져.”(36쪽)
2월은 처음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악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 될수록 2월의 정체는 모호해진다. 거듭되는 반전과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베일이 서서히 벗겨지면서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단순히 권선징악이 아니라 선과 악, 죽음과 삶의 경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비앙카, 나는 네가 하늘만큼 큰 열기구가 되는 꿈을 꾸었단다. 내 몸은 네가 공중으로 던질 수 있는 연이었어. 줄과 말로 나를 끌어 당겨.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고 나한테 말해주시오. 2월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고 말해주시오. 우는 갓난아기의 목에 칭칭 감긴 죽은 들꽃”(79쪽)
미국의 신예작가 셰인 존스(30)가 쓴 초현실주의적인 이 작품은 꿈과 상상으로 채색된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 창조물들의 성격을 글 앞부분에서는 뚜렷이 구분 짓는 듯 하였으나 이들 등장인물들의 중심에 ‘꿀과 연기 냄새가 나는 소녀’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마련해 두었다. 소녀가 이들 사이에 위치하면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모호해 지는 결과를 낳게 되고 독자들은 각 인물들이 취하는 행동의 당위성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고보니 셰인 존스가 태어난 계절이 1980년 2월이다. 뉴욕 주 올버니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뉴욕 주 버펄로에서 대학을 다녔고 다시 올버니로 돌아와 시와 단편소설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필명을 날렸다. 이 책은 그가 올버니에서 서점 직원으로 일하면서 쓴 것이다. 뉴욕 주의 주도로서, 뉴욕 시에서 220킬로미터 떨어진 올버니는 내륙항이 발달해 있고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빙하호가 많다고 한다. 겨울은 상당히 춥고 길어서 봄까지 눈이 쌓여 있으며 여름은 꽤 무덥다. 이 책에 나오는 겨울과 여름의 대비는 올버니의 자연환경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꿀과 연기 냄새가 나는 소녀는 2월의 시체와 함께 바닥에 앉아 있었다. 소녀는 2월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 소녀가 바닥에 있는 구멍 두 개를 보기 위해 2월을 옆으로 굴렸을 때, 그의 등에서 덩굴과 꽃과 피가 자라는 것이 보였다. 소녀는 양피지 한 장에는 6월이라고 쓰고 다른 한 장에는 7월이라고 쓴 다음 노란색을 칠했다. 그리고 양피지 두 장을 꼬깃꼬깃 구겨 구멍 두개를 틀어막았다.”(171쪽)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로 잘 알려진 감독 겸 배우 스파이크 존스는 셰인 존스의 독창적이면서 뛰어난 상상력에 감동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있으며 내년에 미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