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고전이 아름다운 이유

입력 2010-08-26 17:58


1929년 주가 폭락으로 시작한 미국의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시장경제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뉴딜정책. 이 뉴딜정책의 대표적 내용 하나가 농업조정법이었다. 과잉생산을 없애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고 소작농에게 자금이나 땅을 원조해 줌으로써 농업을 구제하겠다는 취지였다.

정책 추진 활성화를 위해 1935년 농업안정국(FSA)이 신설됐고, 컬럼비아대학 경제학 교수인 로이 스트라이커가 FSA 산하 사진단의 책임을 맡았다. 철저한 정부 개입을 전제로 했던 FSA 사업은 자신만의 땅을 갖고 싶어 했던 소작농들의 본질적 욕구를 해결해주지 못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스트라이커가 대국민 홍보를 목적으로 사진가들을 기용해 농촌 현실을 기록한 사진들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장을 연 분기점이자 사진 역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미국인들에게 미국을 소개하다’라는 목표로 시작한 이 작업에는 도로시아 랭, 고든 파크스, 워커 에번스 등 당대 내로라하는 사진가들이 참여했고, 그들이 인화한 사진 분량만도 무려 27만장에 달했다.

그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워커 에번스(1903∼75)의 사진 140여점을 다음달 4일까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에번스는 FSA 사진을 통해 유명세를 탔지만, 사실 그가 FSA와 일한 기간은 1년 반에 불과했다. 농촌의 비참한 일상 등 홍보성 짙은 사진을 요구했던 기획자와 감정 이입을 최소화하면서 작가적 색채를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전형적인 갈등 때문이었다.

전시 작품 중에는 에번스가 친필 사인을 한 2벌의 빈티지 프린트 세트와 FSA와 결별한 뒤 3년 동안 뉴욕 지하철 안에서 몰래 찍은 사진 등 그의 전 생애에 걸친 다양한 작업이 담겨져 있다. 특히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상태의 빈티지 프린트는 모처럼 전시장을 찾아 직접 작품을 보는 일에 즐거움을 선사한다.

생전에 에번스는 중형 사진기를 즐겨 썼다. 소형 사진기보다 무겁고 이동에 제약은 많지만, 덕분에 정교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얻어내 그의 사진 앞에서는 꽤 오랜 시간 발이 묶인다. 선반 하나 제대로 갖출 수 없어 나무막대에 꽂아 놓은 포크와 나이프 등 주방 세간들(사진), 맨발에 해진 옷을 입고 사진기를 바라보고 있는 농부 가족의 초상 등 사진은 얼핏 보면 지나치게 수수해 보인다. 특히 요즘처럼 디지털 사진의 현란한 수사가 전시장을 압도하고 있는 시대에, 사진과 친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따분한 사진전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굳이 대공황 시절 미국에 대한 이해를 구하거나 남다른 서정성과 조형성으로 현대 사진을 가능케 했다는 사진사적 의미를 파악하지 않아도 모처럼 시간의 무게를 느끼기에 충분한, 드물게 깔끔한 전시다. 역사는 당대에 해석할 수 없듯, 진정한 사진의 가치 또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진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