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인간’ 손창섭씨 지난 6월 별세… 37년간 日 은둔

입력 2010-08-25 21:57


37년 동안 일본에서 은둔생활을 해오던 ‘잉여인간’의 작가 손창섭씨가 지난 6월 23일 폐질환 치료를 받던 도쿄 근교 무사시노 다이 병원에서 쓸쓸히 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향년 88세. 지난해 2월 ‘손창섭, 일본에 살아 있다’고 본보가 생존 소식을 알린 지 1년6개월 만이다.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는 25일 “손창섭 선생의 소설 인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달 초 도쿄를 방문했다가 부인 우에노 지즈코(81) 여사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전했다. 방 교수에 따르면 투병 중이던 고인은 사망 직전 의식을 회복해 우에노 여사에게 “나한테 잘 대해줘 고마웠다”는 말을 남겼다. 고인의 유해는 화장돼 한 사찰에 유골이 모셔져 있으며, 다음 달 25일 정식으로 묘를 조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용학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전후문학 작가로 평가받는 고인은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53년 ‘문예’지에 단편 ‘사연기’가 추천돼 등단했으며, 60년대 말까지 6·25전쟁 이후의 참담한 사회상과 부조리를 다룬 작품을 쏟아냈다.

고인은 73년 돌연 일본으로 건너갔다. 지인들은 5·16쿠데타로 인한 군사정권의 타락하고 부패한 사회 현실에 대한 환멸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대표작은 ‘비오는 날’ ‘혈서’ ‘해결의 장’ ‘잉여인간’ ‘신의 희작’ ‘인간교실’ 등이 있으며 55년 현대문학 신인상, 59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36년 만인 지난해 도쿄 인근의 한 노인 전문병원 병상에서 본보와 만난 그는 비록 일본에 귀화했음에도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써 보이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자의식을 드러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