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행정고시에 목을 매는 이유

입력 2010-08-25 17:43


미국 연수를 가서 아들을 현지 고교에 넣어 공부시킨 S씨 이야기. 하루는 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선생님이 전날 자기 반에서 본 시험 문제지를 갖고 다음날 그대로 다른 반에서 보더라는 것이다. 시험문제 유출 가능성이 있을 텐데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S씨는 자신이 공부한 대학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교수가 매년 똑같은 문제를 제출하는데 현지 학생들은 아무도 기출 문제를 파악해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 답안지가 연필로 작성됐음에도 채점이 잘못됐다고 이의를 제기하면 교수가 아무 거리낌 없이 정정해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면 어떨까. 학부모들의 항의소동이 벌어지고 교사는 문제교사로 찍혀 교직에 더 이상 몸담기 어려워질 것이다. 작년에 낸 문제를 그대로 제출한 교수는 나태와 무능의 낙인이 찍혀 역시 대학에서 퇴출 1순위에 오를 만하다.

정직보다 요령 득세하는 나라

왜 이렇게 다를까. 그런 이유로 부정행위가 발생할 경우 미국에서는 학생의 책임인데 왜 우리는 교사의 책임일까. S씨는 ‘도덕성’에 대한 인식과 가치부여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인들이 반드시 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정직’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부정한 행위로 인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거짓이나 허위가 드러나면 헤어나기 어려운 응징이 뒤따른다.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성공적으로 시행되는 배경에는 이처럼 ‘도덕성’과 ‘정직’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인식의 컨센서스가 있다.

국내 대학에서도 입학사정관제가 유행처럼 번지지만 과연 제대로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유는 뻔하다.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도덕성’과 ‘정직’보다 ‘요령’과 ‘융통성’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에 줄대기를 잘 해 출세하는 사람을 보고 “그것도 다 능력이야”라며 치켜세운다. 요 며칠 전개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고 다시 느낀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이 온갖 범법과 탈법을 저지르고도 결격사유가 아니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을 보고 새삼 “아! 이런 게 우리나라였지”라고 되새기게 된다. 그런 후보자들이 그대로 임명되고, 국민은 이를 수용하고, 좀 지나면 다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였다. 남 탓만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어느새 나 자신도 그런 풍토에 물들어 있음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시험’, 그것도 객관적으로 점수가 매겨지는 필기시험이다. 행정고시를 폐지한다고 하니까 고려시대 음서제(蔭敍制)의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급공무원을 그나마 시험으로 뽑으니까 지금까지 뒷말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절반을 외부 전문가로 선발하겠다고 하니 어떤 편법이나 요령이 득세를 할지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의 이유는 우리 사회가 도덕적이지 않음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행시 존폐, 사회투명성에 달려

물론 고시제도의 폐단은 적지 않다. ‘고시폐인’이란 말이 있듯 유능한 많은 젊은이들이 여기에만 매달리고, 일단 합격하면 과도한 보상이 주어진다. 공직 진출 후에는 실력보다는 요령에 의존해 출세길을 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서류전형과 면접으로 공정하게 공직자를 선발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공공기관 CEO 추천위원회가 도입 취지에 맞춰 능력 위주로 공정하게 후보자를 추천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리 좋은 제도도 운영의 투명성, 즉 ‘도덕성’과 결합되지 않으면 도입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