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의 호에는 특별한 뜻이 담겨있다
입력 2010-08-25 14:49
[미션라이프] 목회자의 호에는 특별한 뜻이 있다. ‘여주동행(如主同行)’의 삶, 즉 모든 순간 한결같이 주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영성과 인생철학이 담겨 있다. 목회자들이 주로 호에 사용한 한자는 ‘양(羊)’ ‘영(靈)’ ‘성(聖, 星)’ ‘덕(德)’ ‘은(恩)’ ‘산(山)’ ‘파(波)’ ‘해(海)’ ‘운(雲)’ ‘우(雨)’ 등으로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나 간증이 내포돼있다.
100세의 국내 최고령 목회자 방지일 목사의 호는 곽송으로 뻐꾸기처럼 소나무에 앉아 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뜻이다. 김준곤(1925∼2009) 목사의 호인 유성(遊星)은 태양의 중력을 받아 공전하는 별,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유성 인생을 뜻한다. 조용기(74) 목사의 호 영산(靈山)은 영적인 거대한 산으로 성령운동과 성령에 의지한 삶을, 길자연(69) 목사의 호 덕연(德延)은 덕을 쌓아가는 목회를 의미한다. 평생 바른 신학과 균형 목회를 추구해온 박종순(70), 김삼환(65) 목사의 호는 각각 천파(天波, 하늘의 파도), 은파(恩波, 은혜의 파도)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만리장공 편운부동(萬里長空 片雲孚動) 만우일과후 추양가애(晩雨一過後 秋陽可愛)” 이는 “만리장공에 한 조각 구름이 떠도는가 싶더니 늦은 비 한 차례 지난 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더욱 정겹도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장공(長空)은 김재준(1901∼87), 편운(片雲)은 채필근(1885∼1973), 만우(晩雨)는 송창근(1898∼1951?), 추양(秋陽)은 한경직(1902∼2000) 목사의 호다. 이들은 서로의 특성을 통해 한국교회에 갱신과 비전의 길을 제시했었다.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동기인 장공과 추양은 훗날 신학노선이 달라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양대 지도자로 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우정만큼은 돈독했음이 느껴지는 시다. 서정민 연세대(교회사 전공) 교수는 “네 분의 호를 넣어 지어 서로 나누어 간직했다는 뜻 깊은 시구”라면서 “1985년 9월21일 한국기독교사연구회(현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모임에 참석하셨던 김재준 목사님이 직접 쓰고 낙관까지 찍어주셔서 보관해왔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장공과 추양의 깊은 우정이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에큐메니컬(일치)의 미래와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공은 “내 주께 찬송을 드릴지우니 형제 바람과 태양과 구름과 만리의 장공 그리고 사계절을 지으시고 주는 이 모든 것에 영원한 생명을 베풀어주십니다”라는 구절에서 딴 것. 최초의 한국인 비교종교학자 채 목사의 호 필운은 열왕기상 18장 44절에서 유래된 것. 추양은 가을 햇볕처럼 깨끗하고 온화한 사랑을 의미한다. 만우는 농부들이 귀한 열매를 맺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참아 기다리는 늦은 비의 역할을 뜻한다. 송 목사는 친구 조승제(1898∼1973) 목사에게 춘우(春雨)라는 호를 지어주기도 했다. 한국인 최초의 신학박사인 동초(東憔) 남궁혁(1882∼?) 목사는 6·25전쟁 때 납북된 뒤 공산주의를 홍보하라는 강요에 굴하지 않다가 순교했다.
고난 속에서 경건의 삶을 산 신학자 김정준(1914∼81) 목사의 호는 늦은 이삭을 뜻하는 ‘만수(晩穗)’다. 그는 어느 늦가을 석양이 질 무렵 결핵으로 인생 낙오자가 된 괴로운 심정을 달래면서 추수 때가 지난 텅 빈 논두렁을 홀로 걷고 있었다. 이때 남달리 늦은 벼 이삭, 익을 대로 익어 알맹이가 꽉 찬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논 구석에 알맹이가 찬 채로 버려진 벼 이삭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호를 ‘만수’로 지었다.
부흥사 이용도(1901∼33) 목사의 호는 시무언(是無言)이다. 이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기도로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뜻으로 그가 평생 무언 겸비 기도 순종을 좌우명으로 삼았음을 잘 보여준다. 이 목사는 협성신학교 재학시절에는 심조(心鳥)라는 호를 사용했다. 신학교 친구였던 이호빈(1898∼1989)은 우원(友園), 이환신(1902∼84)은 진해(震海)로 불렸다. 우원은 중앙신학교(현 강남대) 설립자이고 진해는 기독교대한감리회 8대 감독이었다.
주기철(1897∼1944) 목사의 호 소양(蘇羊)은 예수님의 양을 뜻했다. 주 목사의 본명은 기복(基福)이었으나 세례를 받으면서 이름을 기철(基徹)로 바꾸었다. 기독교를 철저히 신앙한다는 의미였다. 성씨마자 붉을 주(朱)자였기 때문에 붉은 피로써 신앙에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였다. 그의 세례는 순교로 결실을 맺었다.
영계(靈溪) 길선주(1869∼1935) 목사, 요산(樂山) 방효원(1886∼1953) 목사, 산돌 손양원(1902∼50) 목사, 정암(正岩) 박윤선(1905∼88) 목사, 소죽(小竹) 강신명(1909∼85) 목사 등도 자신들의 호에 신앙고백을 녹여냈다. 이밖에 강원용(1917∼2006) 목사는 자신의 호 여해(如海)처럼 바다같이 깊고 넓은 삶을 살았고 신현균(1927∼2006) 목사는 부흥사답게 영해(靈海), 성령의 바다를 갈구하며 목회했다. 대구제일교회에서 34년간 목회한 뒤 은퇴한 신학자 정류(靜流) 이상근 목사(1920∼99)는 이성희 연동교회 목사의 아버지다. 대구제일교회와 영남신학대에는 각각 이 목사를 기념한 정류아트홀과 정류제가 있다. 김선도(80) 광림교회 원로목사의 호는 장천(杖泉)으로 광림교회는 2001년 그의 은퇴 기념으로 장천아트홀을 세웠다. 옥한흠(72) 목사의 호 은보(恩步)는 은혜의 발걸음이라는 뜻으로 그의 호를 딴 은보도서관이 설립됐다. 박춘화(75) 창천교회 원로목사의 호 해암(海岩)과 백석학원 설립자 장종현(61) 목사의 호 하은(河恩)에도 간증이 담겨있다.
장로의 호 중에는 일가(一家) 성산(聖山)이 유명하다. 일가는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 김용기(1909∼88) 장로의 호로 한국(조선) 민족은 모두 한 가족과 같은 운명공동체적 혈연관계라는 의미다. 그는 일을 같이 하며 더불어 사는 형제와 자매, 친구들을 ‘동기(同氣)’라고 부르며 종래의 동기라는 용어의 뜻을 확대해 사용했다. 성산은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1911∼95) 박사의 호이다. 성산은 최성규(69) 인천순복음교회 목사의 호이기도 하다.
◇호(號)란
실명보다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것.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는 우리나라와 중국 풍속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호를 통해 인물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거주지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사물 등을 호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래 호가 사용됐으며 조선시대에는 일반 사대부와 학자들에게 보편화됐다. 이름보다 호를 사용하는 게 예의를 차리는 걸로 인식됐다. 추사 김정희는 호가 500여개에 달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함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