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고상두] 유럽의 이란 제재

입력 2010-08-24 19:39


중동 역사는 터키 아랍 페르시아의 패권경쟁으로 점철됐다. 오스만 터키는 중동을 통일하고 유럽까지 점령했다. 이집트의 나세르와 이라크의 후세인은 아랍인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범아랍주의를 내세우며 아랍의 단결과 통일을 꿈꾼 인물들이다. 이란은 1979년 혁명 후 정치와 종교가 일치하는 ‘신의 국가’를 건설했고, 친서방적이고 세속적인 중동국가에 이슬람 혁명을 수출하고자 했다.

국제정치에서 주변부 국가가 주목을 받는 경우는 석유, 핵, 테러리즘을 무기로 행사할 때이다. 이란은 석유와 테러의 수출국이고, 이제 핵무기를 가지려고 한다. 세계 석유매장량 2위인 이란이 원자력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서방은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능력을 자랑하는 의미에서 올해 발행된 신권 지폐에 원자력 상징을 그려 넣었다. 이란은 순도 20%의 우라늄 농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라늄은 발전용으로는 순도 3∼4%이면 충분하고 핵무기를 위해서는 순도 90% 이상이 돼야 한다.

석유 대국이 원자력 개발

지난 6월 미국은 유엔안보리에서 2006년 이후 네 번째의 이란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대한 제재가 추가됐다. 혁명수비대 주요 인사의 해외여행, 계좌, 교역거래가 금지된 것이다. 미국은 이란의 핵개발 자금을 고갈시키기 위해 석유산업에 대한 제재를 원했지만 실패했다. 그 대신 이란의 핵개발 방지를 위해 국제사회가 유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결의안에 넣었고, 이것에 근거해 동맹국에게 독자적인 제재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외무장관 회의에서 이란의 핵심 산업인 석유부문에 대한 교역과 투자를 제한하고, 의혹이 있는 금융자산을 동결하며, 상품선적에 필수적인 보험가입을 거부하고, 이란 선박의 유럽입항을 금지하는 독자제재에 합의했다. 유럽연합이 광범위한 제재를 결의하는 데에 내부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석유개발 장비를 이란에 수출하는 스웨덴은 포괄적인 제재에 반대했고, 그리스 몰타 키프로스는 이란 선박의 유럽 입항금지에 반대했다. 하지만 구 소련의 붕괴 이후 전쟁의 공포가 사라진 유럽에게 가장 근접한 안보위협은 중동이다.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논리가 이겼다.

서방 조치에 대해 이란은 강하게 맞서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이란에 우호적인 나라가 많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이란과의 에너지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은 이란의 석유산업에 대한 제재가 유엔결의안에 포함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최근 이란의 원자력발전소를 완공한 러시아는 이란에 대한 제재가 과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란의 농축우라늄 1200㎏을 연료봉으로 바꿔주는 거래에 성공한 터키는 안보리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 국가들은 이란의 서방교역을 대체할 것이며, 결의안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것이다. 특히 이란은 이라크와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내년 이라크에서 철수하는 미국으로서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라크와 이란이 협력하고, 터키가 이란 편을 들고 있다.

국제제재 동조 표시해야

이란에 대한 두 개의 전선이 형성된 상황에서 중동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이란은 핵을 평화적 목적으로 개발한다고 주장하고, 안보리 결의안을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유엔 결의안이 정한 범위 내에서 가장 강도 높은 제재를 실행하는 ‘실효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의혹 선박에 대한 철저한 검색계획을 마련하고,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모든 금융거래를 신고제로 전환하는 등 의혹 없는 교역을 보장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이란과의 교역단절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란 제재에 동조하는 자세일 것이다.

고상두 연세 SERI EU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