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연숙] 사람과 사람 사이
입력 2010-08-24 19:38
숨이 가쁘다. 발로 땅을 밟는 것조차 힘겹다. 굵은 땀줄기가 얼굴을 덮고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다. 앞을 알 수 없는 산세가 마음을 무겁게 하고, 한 발 내딛는 게 힘들지만 풀향기, 새소리가 앞으로 가라고 유혹한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친구와 2박3일 일정으로 지리산 둘레길 완주에 나섰다. 6월 시작한 둘레길 걷기의 연장선으로, 이번 여정은 전라도에서 시작해 경상도에서 끝나는 것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아직 하동-구례 일대 둘레길이 조성되고 있어서, 완주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지금으로서는 완주라고 해도 틀린 건 아니다.
너무나 강렬한 8월의 햇빛이 온 신경을 마비시킬 것만 같은 기세여서 과연 둘레길을 완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중년의 아저씨 여행자로 인해 무사히 둘레길도 완주하고, 산행의 매력도 느낄 수 있었다.
함양 초입에서 만난 그는 친구와 함께 우리 뒤를 따르고 있었다. 방향이 같았기에 인사를 나누면서 함께 걸었다. 하지만 산악인인 그의 속도를 따라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내 그는 눈앞에서 사라졌고, 그가 햇빛을 피해 한참을 쉬고 있을 때 우리가 그를 지나가던가, 그가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추월하는 식으로 몇 번을 마주쳤다. 그는 두 번이나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의 일정으로는 자칫하다간 산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며 일정을 변경할 것을 권유했다. 우리는 그의 권유를 따랐고, 그와 같은 곳에서 민박을 했다.
공직생활만 30년을 했다는 그는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게 많은 중년이었다. 도저히 50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외모였다. 저녁을 먹으러 나오니 달이 노랗고 밝은 것이 달걀 노른자 같다. 그는 달을 보고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를 읊어 주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는 동안 그의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삶의 이야기가 계속됐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잠시 후 밖에 나가 보니 사이다 4잔과 하모니카가 보이는데, 그가 산행을 자축하기 위해 마련한 쫑파티였다. 그는 하모니카를 배운 지 3개월이 되었다며, 친구를 위해 준비한 하모니카 연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우리는 재를 두 개 남겨두고 헤어졌다. 그것으로 지리산에서의 만남은 마지막인 줄 알았다. 친구와 나는 숨가쁘게 재를 넘어, 둘레길이 끝나는 지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2시간마다 온다는 차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했다. 얼마나 더 길을 가야 할지 알 수 없어 막막하던 때, 전화가 왔다. 이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그는 우리를 서두르게 해 버스 도착 1분 전에 정류장에 도착하게 했다. 그는 시원한 생수로 우리를 반기며, 그 물은 옆 팀에게 말 한 마디 걸고 얻은 거라며 우리를 편하게 해줬다. 그렇게 우리는 둘레길을 완주했다.
그는 사람과 삶에 대해 결론짓지 말라고, 그리고 많은 것을 경험하라고 몸소 보여줬다. 문득, 그를 만나기 불과 5분 전 우리 나이 때로 돌아가면 나도 둘레길 종주를 하고 싶다고, 못한 본인이 바보 같다고 하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김연숙 출판도시문화재단기획홍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