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강당 주일예배 20년… ‘교회는 건물이 아닌 사람’ 열린 예배 의식 확산

입력 2010-08-24 20:41


서울 도곡동 중앙대부속고등학교는 매일 새벽과 수요일 저녁, 일요일만 되면 서울나들목교회로 바뀐다. 학교 진입로와 건물에 교회의 방향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고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깔린다. 강대상은 물론 스피커와 헌금함, 주보 진열대까지 설치된다. 학생들이 이용하던 강당은 금세 예배당으로 뒤바뀐다. 교회는 2007년 12월 허름한 실내 강당을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으로 개조했으며, 매년 일정액의 장학금을 내놓고 있다. 교회는 스승의 날이 되면 교사들에게 떡을 돌리고 기독 서클 활동도 돕는다. 박원영 목사는 “학부모회와 학교 재단, 교사회, 교육청 등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강당 리모델링을 한 뒤 퇴거할 때 아무런 조건 없이 놓고 나오겠다는 제안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금싸라기 땅에서 이만한 예배공간과 주차장을 확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이런 이점 때문에 지난 5월부턴 온누리교회가 바로 옆에 위치한 숙명여고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우리들교회(휘문고) 주님의교회(정신여고) 분당우리교회(분당 송림고) 제자들교회(영파여고) 열린비전교회(성덕여상) 남송교회(오주중) 높은뜻광성교회(광성고) 높은뜻정의교회(정의여고) 등등.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교회에 확산되고 있는 현상 중 하나가 학교 강당을 빌려 예배 장소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배공간에 대한 보수적 인식이 누그러지고 열린 예배의 시행과 함께 ‘교회는 건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교회론이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학교는 공간 활용도를 높여 교육복지에 필요한 재정을 늘리고, 교회는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도 넓은 예배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맞아떨어졌다.

한국교회가 학교를 이용한 첫 번째 사례는 1990년 개척 초기부터 서울 상일동 한영고등학교를 활용한 한영교회라 할 수 있다. 교회는 주일과 수요일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는 학교 부근 상가를 얻어 297㎡의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학교교회’를 처음 제안한 김경래 원로장로는 “교회 건축에 필요한 토지를 구하기 힘들고 막대한 헌금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완공된 건물을 이용함으로써 곧바로 구제와 양육에 뛰어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낙춘 담임목사는 “아무래도 교회가 학교 안에 있다 보니 성도들 사이에서 ‘교회만의 공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면서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좀 더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지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당교회’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서울 청파동 삼일교회는 늘어나는 성도를 감당하지 못하자 99년부터 숙명여대 강당과 칼빈신학교, 선린중학교를 활용했다. 교회는 숙명여대와 함께 사용하는 체육복합시설 신축도 고려했지만 2007년 학교 측 요청에 따라 예배공간을 옮기게 됐다. 교회는 현재 선린중학교를 팀 모임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교회 관계자는 “숙명여대의 사정 때문에 강당에서 나오게 됐고 교육관으로 사용하려 했던 8층 높이의 베다니관이 본당 역할을 하게 됐다”면서 “강당 사용료 외에 1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는데 지금도 장학금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성권 목사는 “강당에서 예배를 드릴 땐 여름엔 무덥고 겨울엔 추웠지만 ‘헝그리 정신’으로 이길 수 있었다”면서 “건물의 편안함보단 생명의 말씀, 열정을 찾다 보니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분명한 한계는 존재한다. 매달 500만원씩 장학금으로 내놓으며 서울 강남지역 공립학교 강당을 4년간 빌려 사용하다가 2007년 철수한 모 목사는 교회를 옮기면서 교인의 절반이 떨어져 나가는 현상을 목격했다. 그는 “강남에서 학교와 비슷한 규모의 공간을 빌리기 위해선 최소 10억원 가량의 보증금이 필요했고 결국 지하공간을 얻다 보니 성도들이 자연스레 줄더라”면서 “사립학교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겠지만 공립학교의 경우 교장이 수시로 바뀌고 교회에 공간을 내주는 명분을 찾는 데 미묘한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탁월한 접근성과 넓은 공간이 큰 장점이지만 주인의식 부족과 주중 모임공간을 찾아야 하는 문제점도 상존한다”면서 “결국 강당 사용 여부는 교회 공동체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