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진 교수, “고종 황제, 日에 독살되었을 수도”
입력 2010-08-24 18:26
강제병합 100년 학술대회
1904년 2월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 한 달 전에 러시아 측이 전쟁을 피하려고 러일동맹을 추진 중이라는 정보를 일본 정부가 입수하고도 묵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24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개최한 ‘한일강제병합 100년 재조명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러시아 황제의 신뢰를 받은 주전파 정치인 베조브라초프의 서명이 있는 1904년 1월 10일자 동맹안 문서를 인용, “베조브라초프가 러일동맹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주러 공사가 일본 외무성에 처음 보고한 것은 같은 해 1월이지만 당시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 외상은 이런 정보를 전해 듣고도 같은 달 8일 가쓰라 다로(桂太郞) 총리 및 육해군 대신들과 협의해 개전 방침을 정했고 이후 다음 달인 2월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일본에서는 러일전쟁에 대해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에서 나오는 ‘궁지에 몰린 일본의 방어 전쟁’이라고 보는 견해가 압도적이지만, 이 문서로 인해 이런 견해가 재평가되게 됐다”며 “현재 일본에서는 ‘언덕 위의 구름’이 NHK에서 TV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데 그와 관련해 변호적인 주장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강제병합 조약 체결의 절차적 무효성을 밝히는 데 천착해온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날 회의에서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수기와 1919년 고종 서거 당시 일본 궁내청 관리였던 구라토미 유자부로의 수기를 근거로 일본에 의한 고종 황제 독살설을 주장했다.
이 명예교수는 “일본이 이웃나라의 왕과 왕비를 살해하면서까지 (제국주의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문제, 광기의 역사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며 “엄연한 역사의 진실은 (일본인들의) 자성으로 치유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고종은 독립협회 세력을 비롯한 망명자 세력들을 자신의 영향력 안에 포괄하는 정치력을 보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고종을 무능한 군주로만 평가하고, 대한제국의 개혁작업을 부정하는 것은 부당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종이 져야 할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것도 올바른 역사적 성찰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6일까지 열리는 국제학술회의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미국, 독일 등 6개국 33명의 역사학자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학술행사로 식민지배의 실체적 진실을 사상사적으로 접근한 1세대 학자들뿐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일상을 미시사적으로 연구하는 2세대 학자들까지 망라하고 있다.
정철훈 선임 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