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0-08-24 17:50


(8) 채리톤이 머문 동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엡 5:26∼27)

이집트의 안토니를 영웅적인 수도자로 세상에 알린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아타나시우스(293∼373)였다. 그가 쓴 ‘성 안토니의 생애’는 안토니가 죽은 이듬해 쓴 것으로 기왕에 안토니의 명성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집트 사막으로 향하게 했다. 그 무렵 이스라엘에도 최초의 수도원이 생겨났다. 주인공은 소아시아에서 온 순례자 채리톤이다.

그는 주후 330년 유대 광야에 최초의 이스라엘 수도원을 세웠다. 유대 광야는 본래 성서시대부터 영적 훈련의 요람이었다. 이곳은 광야에 살던 유목민들의 이상에 따라(렘 2:2, nomadic ideal) 나실인들이 서원하고 레갑 족속들이 금욕을 실천했던 곳이며(렘 35:1∼19) 엘리야, 엘리사가 바알에 맞서 싸우고 예수님, 세례 요한이 간절히 기도하던 곳이기도 했다. 또한 유대인의 금욕 공동체 쿰란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채리톤은 3세기 후반, 소아시아에서 태어나 독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그러다가 핍박의 시대, 로마 관헌에게 붙잡혀 감옥에서 순교의 날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살려준 사건이 일어난다. 곧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그는 석방되었고 석방된 후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까 생각하다가 평생의 소원이었던 성지순례를 떠난다. 그는 예루살렘, 베들레헴에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 후 때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갔다. 그가 지금의 예루살렘 남쪽 15㎞ 지점에 위치한 쿠레이톤 언덕에 이르렀을 때 한 쉴 만한 동굴을 발견하여 그곳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강도 둘이 나타나 채리톤의 손과 발을 묶더니 돈과 물건을 빼앗았다. 간신히 눈을 들어 주위를 보니 동굴 안에는 이미 수많은 시체와 피가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강도들은 주머니에서 포도주병을 꺼내 이내 벌컥벌컥 마시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강도들이 나간 사이 동굴 속에 뱀이 들어와 포도주에 독을 풀어 놓고는 사라졌다. 그것도 모른 강도들은 한참 후에 다시 들어와 포도주를 마셨고 강도들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정신을 차린 채리톤은 몸을 움직여 밧줄을 풀고 강도들의 시체를 밖으로 끌어내 묻어주고 동굴을 정결케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피, 시체, 더러운 냄새로 가득했던 동굴은 얼마 후에 깨끗해졌다. 채리톤은 광야의 막대기로 십자가를 만들어 벽에 붙이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그때가 주후 330년, 이스라엘에 최초의 수도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바란 수도원이라 명명된 그곳은 안타깝지만 지금은 찾아 볼 수 없으며 다만 고고학자들에 의해 대략의 위치만 확인될 뿐이다.

수도원은 무엇인가? 그리고 교회는 왜 있는가? 교회는 죽음의 피로 범벅된 동굴 같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하고 그 위에 십자가를 세워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다

만일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평생 버려진 동굴로 남아 있었을지 모른다. 수도원, 그리고 수도원 운동은 타락한 시대, 그 내면의 영성을 정결케 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그 시대 영혼의 동굴이었다.

이윤재 목사 <한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