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 쌀지원 관련 “원칙은 불가인데… ”

입력 2010-08-23 18:44

대규모 물난리로 북한이 식량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여야와 장관 공직 후보자들이 정부에 대북 쌀 지원 검토를 주문하고 나섰다. 일단 통일부는 ‘쌀 지원 불가’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는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추석도 가까워 온 만큼 인도적 차원에서 쌀 지원 문제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인도적, 정치적 차원은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도 “국내 쌀 재고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도주의적이고 남북 간 화해·협력 측면에서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22일 열린 당·정·청 9인 회의에서 2008년 2월 이후 중단된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부와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는 수해로 북의 식량난이 가중되고 있고, 우리 측은 쌀 재고 관리가 필요하며, 경색된 남북관계에 물꼬를 튼다는 의미 등을 지원 이유로 들었다.

야당들도 대북 쌀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북한 동포들은 기아 상태”라며 “자존심 상하게 하지 말고 조건 없이 쌀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식량지원과 천안함 침몰에 대한 제재 및 사과 요구는 별개”라고 밝혔다.

그러나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현재 정부는 대북 쌀 지원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 5·24 천안함 대응 조치에 따라 대북 지원사업은 원칙적으로 보류하되,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유지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옥수수 1만t 지원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공식 입장과 달리 정부도 이 문제를 놓고 고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상황을 마냥 무시하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먼저 지원을 요구할 경우,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분배 투명성 등을 전제로 지원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