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정철훈] 문학관을 우짤꼬

입력 2010-08-23 18:51


휴가는 결핍을 깨닫게 하는 시간인 모양이다. 이를테면 그동안 찐 달걀만 쥐고 있었을 뿐 정작 소금이 없었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된 경우다. 내게 부족한 것은 두 가지였다. 웃음과 걷기. 자주 웃고 자주 걸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웃을 일이 거의 없는 시대여서다. 걷기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어떤 식으로든 그 시대적 속성의 발현이며, 넘치는 쪽보다 부족한 걸 메우려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상념도 걷기의 소산이었다.



지방의 한 문학관 모퉁이 방에 머물면서 문학관장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문학관이 지어진 것은 10여 년 전. 국비와 도비를 합쳐 100억원 넘는 돈이 들어갔지만 문제는 운영이었다. 방문객이 거의 없어 입장료 수입으로는 도저히 채산을 맞출 수 없는 것은 물론 몇 안 되는 상주 직원들의 봉급을 대기에도 급급했다.

문화예술위원회 측에 보조금 신청을 해오고 있지만 승인 액수는 매년 줄어 지속성 있는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처지였다. 콘텐츠도 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시실에는 작고 문인 사진과 생전의 육필 원고, 문방사우, 그리고 작품집과 논문집이 고작이었다. 문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을 제정해 운영하기도 하고 백일장이나 세미나를 여는 문학관도 있지만 그것도 후원 기관의 도움 없이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현재 전국문학관협회에 등록된 문학관은 46개다. 경상도 13, 전라도 10, 서울 7, 경기도 6, 강원도 5개 등의 순인데 제주도는 아직 등록 단체가 없는 실정이다. 생존 작가가 자택에 꾸민 문학관까지 합치면 100여 개쯤 되지만 대부분이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문학은 그것을 떠먹는 사람에게는 양식이 되고 소금이 될지언정 문학관은 그것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건축의 본질적 특성은 만듦과 동시에 부서진다는 양극적 대조에 있다. 작고 문인을 위대하게 만들기와 위대해지기 전에 부서지고 마는 대조가 문학관을 채색하고 있었다.

모든 형상은 그 형상 안에 본질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집은 집일 뿐,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의미인 문학의 본질은 집 바깥에 있는 것이다. 집짓기란 이런 은유의 축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학관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고 또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이미 말해버렸거나 또 지금 이 순간 말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언급되지 않았지만 절박하게 뭔가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미학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돌이켜보면 삶은 무엇인가를 짓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콘크리트 양생 기간이 끝나고 거푸집을 떼어내는 순간, 혹은 준공식과 함께 머릿돌을 세울 때 그것은 이미 무너지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작고 문인들은 대개 지방 출신이어서 그들의 문학관은 군 단위에 들어서 있다. 이에 비해 천재 시인 이상의 경우 서울 통인동 보도블록 위에 ‘생가터’라는 표식이 있을 뿐이다. 문학관도 문학의 순도와는 별 상관없이 난립하고 있는 것이다.

중심의 분산이라는 측면에서 작고 문인들의 문학관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 마당에 서울은 텅 비어 있다. 서울은 이제 출생지나 인구 비율로 볼 때 국민 모두의 고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서울엔 중심이 없다. 볼 게 없다. 서울역에 내리면 목멱산을 가린 빌딩이 위압적으로 버티고 있고 청계천에 물이 흐른다 해도 그건 마음의 물길은 아닌 것이다. 정지용의 시구처럼 ‘옛 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정경은 문학관에도, 그의 고향인 충북 옥천에도 없다.

중심이란 위치적이거나 지리적인 지점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화 중심이 서울에 있다거나 혹은 지방에 있다는 말은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 중심은 이 노마드 시대를 떠도는 모든 개개인의 마음에 있다. 중심의 회복. 그건 이미 존재했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건 없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중심은 수수께끼다. 중심은 형체가 없다. 난 문학관장에게 돈도 되지 않고 현실성도 없는 이 말을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정철훈 문화과학부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