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실수로 다쳤는데 왜 우리가 치료비 주나” 존재이유 까먹은 학교안전공제회
입력 2010-08-22 18:43
유모(20)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2008년 4월 체육시간에 공놀이를 하다가 친구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친구의 치아가 빠지는 바람에 유씨는 졸업 후 최근까지 서울학교안정공제회와 힘겨운 법정 싸움을 벌였다. 공제회가 친구에게 지급한 보상금의 절반(425만원)을 유씨 측이 부담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공제회는 “유씨의 부모가 자녀 감독을 소홀히 해서 벌어진 일인 만큼 공제회가 보상금 전액을 부담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공제회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패소하자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 역시 “체육활동 중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은 것을 유씨의 중대한 과실로 볼 수 없다”며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학교에서 발생한 사고로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한 학생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학교안전사고법)이 다음달 1일이면 시행 3년째를 맞는다. 하지만 공제회가 가해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소송을 내는가 하면, 피해학생의 보상금을 깎는 ‘과실상계’ 기준을 내세우고 있어 학생·학부모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22일 민주당 김춘진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공제회가 보상금 전액을 지급한 경우는 전체 5만4000여 보상건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만6000여건에 불과했다. 학교안전사고법에 규정돼 있지 않는 과실상계 기준을 대며 보상금을 깎고 있기 때문이다. 공제회 측은 현재 가해학생을 상대로 낸 소송 건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보상에는 인색하지만 지난해까지 공제회의 전체 이월금 규모는 1000억원이 넘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실 집계에 따르면 공제회가 보상에 사용한 예산은 2008년 172억원, 2009년 196억원이었다. 하지만 이월된 예산은 2008년과 2009년 각각 922억원, 1039억원으로 보상금의 5배를 웃돌았다. 공제회 관계자는 “민영보험은 보상금의 4∼6배 이상의 금액을 자산으로 유지한다”며 “보상금액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1000억원도 부족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춘진 의원은 “공제회 기금은 학교의 운영비와 지방자치단체의 교부금으로 충당하는 공적기금으로 민영보험사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공제회 측에서 그동안 법적 근거 없는 과실상계 기준을 적용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부당한 피해를 입어 왔다”며 “8월 중에 피해학생에게 과실을 묻지 않는 무과실 책임원칙을 명기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직접 보상금을 청구할 수 없는 시스템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는 학교장이 공제급여시스템에 사고 발생을 통보했을 경우에만 보상금이 나온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박부희 상담실장은 “학부모들 중 학교에서 사고통지를 해주지 않아 보상금을 청구하지 못했다는 상담사례가 많다”며 “학부모가 신고하면 조사권을 갖고 있는 공제회가 충분히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데도 학교 측에만 사고를 통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