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 ‘황금알’ 됐다… 너도나도 몸집 키우기 ‘제2 카드대란’ 겁난다
입력 2010-08-22 18:35
신용카드 시장이 소리 없는 총성으로 가득하다. 국민은행·농협 등 시중은행들이 앞 다퉈 카드 부문을 분사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에 새로운 카드사업자도 속속 등장할 조짐이다. 기존 전업카드사와 함께 시장 선점을 위한 혈전이 불가피하게 됐다.
파격적 혜택을 주는 상품이 나오고, 불법·편법을 동원해 신규 회원을 모집하는 카드 모집인도 등장했다. 2003년 ‘카드대란’이 재연된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왜 금융권이 신용카드 시장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황금알’로 변신=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신용카드 이용실적(국내 회원의 국내·해외 이용실적 합계)은 250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228조2000억원)보다 9.7% 증가했다. 분기별로 쪼개보면 신용카드 이용실적은 매년 꾸준한 상승세다. 특히 지난해 경기 침체로 내수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는데도 3분기 119조원이었던 이용실적은 4분기에 124조9000억원까지 증가했다.
유동성 위기로 촉발된 2003년 카드대란 당시 천덕꾸러기가 ‘황금알’로 탈바꿈한 것이다. 카드사 영업이익은 2003년 8조5410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2조3095억원 흑자로 6년 만에 10조9000억원이 늘었다.
수익 구조는 탄탄해졌다. 2003년 53.5%에 이르렀던 현금대출(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비중은 지난해 21.1%까지 줄었다. 신용판매 비중은 같은 기간 46.5%에서 78.9%까지 올랐다. 건전한 카드 사용 문화가 정착되고, 가계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용판매 비중이 커진 것이다. 연체율은 전업 카드사(은행업을 하지 않고 신용카드업만 하는 회사)가 지난 2분기 말 현재 1.84%, 은행계 카드사가 1.53%다.
은행 지주회사에 소속된 신용카드사, 은행의 카드 부문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가 2분기에 달성한 당기순이익 5886억원 가운데 신한카드 당기순이익(2634억원) 비중이 절반 가까이에 이른다. 국민은행의 경우 상반기 당기순이익 1735억원 가운데 카드부문이 1700억원 정도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은행권은 카드 부문을 분사해 공격 경영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카드대란’ 잊었나=문제는 출혈경쟁이다. 수익구조 약화, 유동성 위험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은행권의 분사 추진과 새 사업자 등장으로 카드시장은 무한경쟁체제로 돌입할 전망이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1월 SK텔레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하나SK카드를 출범시킨 데 이어 국민은행과 농협은 내년 상반기 카드 부문을 분사할 계획이다. 우리은행도 분사를 추진할 예정이다. 여기에다 우정사업본부(우체국)와 산은금융지주는 카드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KT는 BC카드 지분을 인수하며 시장 진입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에 맞서 6개 전업카드사들은 상반기 영업비용을 3조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0%나 늘렸다. 시장 선점을 위해 미리 많은 돈을 투입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파격적 혜택을 주는 상품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전월 사용실적 제한 없이 할인·적립 혜택을 주는가 하면 이용 금액에 따라 무료 쇼핑 기회를 준다. 주유소에서 ℓ당 최대 100원까지 할인 받는 카드도 출시됐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