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차윤정] 환경운동의 정체성
입력 2010-08-22 17:49
한강 살리기 사업의 이포보 현장 점거 농성이 한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기상은 유례없는 천둥과 번개, 폭우와 폭염으로 농성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농성 초기, 농성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캠프를 방문했을 때,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불편함보다는 험한 길을 가고 있는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위로가 앞섰다. 그러면서 ‘환경운동’ 그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 부인할 수 없음을 강하게 받아들이며, 한편으로 어쩌면 필자 스스로가 저 농성의 현장에 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어떤 사안을 둘러싸고 있는 ‘사실’ 역시 하나가 아닐 경우가 많으며 그것을 선택하는 사회적 가치나 여건도 다르다. 다가치, 다중적 사회구조는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이해와 타협이라는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지켜져야 할 것은 각 이해집단이 주장하는 바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포 현장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현실은 해마다 홍수의 위험으로 가슴 졸이는 여주군민들의 고통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강변 바람을 타고 실려 오는 하천변 경작지들의 거름냄새다.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깔고 바라보는 사업의 현장은 강을 매립하여 도시를 건설하는 사업도 아니고, 댐을 막아 일대를 수몰시키는 사업도 아니며, 수로 전체를 콘크리트로 바르는 것도 아니다.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수로에 대해 퇴적된 토사를 걷어내어 범람 위험을 줄이고, 수중보를 설치해 물을 확보하며, 수로와 둔치를 다듬어 수변 생태공간을 회복시키고, 하천 수질을 위협하는 경작지를 정리하겠다는 사업 내용은 환경운동가들의 요구사항이어야 한다.
정치개입하면 순수성 사라져
이포 현장으로 이어지는 정치권의 행보 또한 순수하고 정치중립적이어야 할 환경운동의 순수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정치인들은 환경운동가들을 존중하고 그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걱정을 한다면 사업에 대한 찬반을 떠나 안전하게 내려와 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하지 못한 위대한 일을 환경운동가들이 대신해준다는 격려와 농성자를 위한 별도의 물과 식량을 올려 보내는 일은 환경운동의 진정성을 해치는 듯하여 바람직하지 않은 행보다.
환경운동의 당위성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 역시 험한 길을 걸어가는 환경운동가들의 정신과 실천을 높이 사고 있으며, 환경이나 생태에 대한 절박하고 애잔한 마음이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문제를 보는 사람들은 환경단체들뿐만이 아니다. 전문가 그룹과 학생, 그리고 소신과 믿음을 가진 일반 시민들도 있다.
통상적으로 학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시민운동가가 되기에 한계가 있다. 학자들은 어떤 문제에 대한 다양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학자적 양심에 의해 어느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기가 힘들다. 다양한 사실들에 대한 우선적 가치 판단은 국정운영자나 국가관리자의 몫이다. 물론 선택 과정에는 전문성과 책임이 절대적이다.
정부에 맡기고 책임 물어야
환경운동을 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은 그들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 그리고 어려운 길을 기꺼이 걸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감이다. 따라서 정치인이나 정치적 색채를 띠는 사람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한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말 그대로의 비정부조직이 될 수 있고 대다수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지금 4대상 사업 현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환경운동단체 주장에는 절박한 환경적 이슈가 없어 보인다. 사업의 무조건적인 중단, 국회 차원의 검증특위 구성 등과 같은 요구는 지역민들의 숙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불법 점거하여 주장할 수 있는 환경운동의 성격이 아닌 듯 하다.
차윤정 4대강살리기본부 환경부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