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10대 소년 ‘빌리’와 만나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공연 3시간 동안 지루할 틈 안줘

입력 2010-08-22 17:38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꽁꽁 얼어붙은 뮤지컬 시장을 녹일 수 있을까. 가능성은 크지만 아직은 좀 부족해 보인다. 열쇠는 빌리 역을 맡은 네 명의 어린이가 공연 기간 동안 얼마나 성장하는 가에 달려 있다.

‘빌리 엘리어트’가 올해 들어 지금까지 공연된 뮤지컬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공연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공연시간이 무려 3시간(20분 인터미션 포함)이나 되는데도 지루할 틈이 없이 공연은 꽉 찬 느낌을 준다. ‘빌리 엘리어트’는 탄광촌에 사는 한 소년이 우연히 발레를 접하면서 발레리노의 꿈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주제에 맞게 공연은 춤이 핵심이다. 발레를 비롯해 탭댄스, 아크로바틱 등 다양한 춤이 등장한다. 빌리와 친구 마이클이 함께 탭댄스를 추는 장면이나 2막 시작과 함께 대처 수상을 풍자하는 인형극 등은 눈길이 가는 장면이다.

제작진은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150㎝이하의 소년’을 빌리의 외형적인 기준으로 삼았다. 여기에 춤도 출줄 알아야하고 연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영국 소년인 빌리의 정서를 해석해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해야 한다. 빌리는 ‘빌리 엘리어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공연에서는 김세용(13) 이지명(13) 임선우(10) 정진호(12) 등 4명의 소년이 빌리로 나선다. 2009년 2월부터 시작된 오디션을 통해 800명 중에 뽑힌 재목들이다. 빌리 역을 맡은 소년들은 정말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다. 어려운 춤을 무리 없이 소화하고 심지어 와이어에 매달려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한다. 빌리가 춤을 마칠 때마다 객석에선 환호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소년들이 완전히 빌리로 거듭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화려하지만 어딘지 허전한 느낌이 있다. 빌리가 엄마의 편지를 읽으면서 부르는 ‘더 레터’나 1막 마지막에 화가 나 추는 ‘앵그리 댄스’ 그리고 공연 전체의 하이라이트하고 할 수 있는 ‘일렉트리시티’ 장면 모두 강한 임팩트를 주기엔 세기가 약했다. 공연 초반이어서인지 배역에 몰입했다기보다 주어진 미션을 기계적으로 소화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무대에 빠르게 적응하는 재능 있는 아이들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느낌까지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극중 비중이 크고 힘든 동작이 많아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도 이 공연의 성공을 위해 중요해 보인다.

공연 중에 눈에 거슬리는 장면도 종종 보였다. 권투를 가르치는 장면에서 어른이 아이를 때리는 장면이나, 빌리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윌킨슨 선생이 아이들이 있는 데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태우는 모습,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소년의 입에 담기 민망한 걸쭉한 육두문자가 여과 없이 나오는 건 보기에 따라 불편할 수 있다. 영국과 한국의 문화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대사뿐만 아니라 무대까지 고스란히 옮긴 결과로 보인다.

요즘 뮤지컬 시장은 눈에 띄는 스타 없이 아역배우가 주인공인 뮤지컬에 13만원(R석)을 기꺼이 지불할 정도로 그렇게 따뜻하지 않다. 1980년대 영국 탄광촌을 배경으로 시대상을 반영하는 이야기도 뮤지컬 마니아들의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작품이 뮤지컬 팬들의 얼어붙은 마음과 지갑을 열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오픈 런으로 LG아트센터에서 공연중(02-3446-9630).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