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찬의 내가 만난 하나님(12)

입력 2010-08-22 13:46


저는 감히 희망의 소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제가 저 자신에게 전하는 것이며, 제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며, 우리 한국인과 한민족은 물론 세계인 모두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저 미래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헌 살림은 버리고 새 살림을 장만하자는 것이며, 헛 살림에 영혼을 불어넣어 참 살림으로 살려내자는 제안입니다.

산 속에서는 산을 볼 수 없고, 바다 속에서는 바다를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가 바쁜 삶 속에서는 그 삶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삶의 일상을 벗어나 그 삶을 바라볼 때에만 비로소 그 삶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죽였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제가 저를 죽인 그 자리가, 제 삶의 전부를 통렬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그때, 저는 제 옛 삶의 벌거벗은 모습을 송두리째 볼 수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삶의 자리를 떠나야만 그 자리를 볼 수 있습니다.

고대의 어느 신화에서처럼 자신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거울은 유감스럽게도 없습니다. 다행스럽게 목욕탕이 있어 우리 몸에 붙은 때는 매일 씻어낼 수라도 있습니다. 매일 씻어도 때가 밀리는 우리의 몸을 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역시 매일 때에 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우리 마음의 때를 씻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마음을 씻을 수 있는 목욕탕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의 삶에도 씻어내야 하는 때가 덕지덕지 쌓이기 마련인데, 우리는 우리의 삶의 찌든 때를 씻어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마음의 때꾸러기들입니다. 삶의 때꾸러기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목욕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을 정케 해주는 목욕탕이 필요합니다. 사람마다 집집마다 마을마다 마음의 목욕탕, 삶의 목욕탕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과 삶을 매일 정화시켜야 합니다. 매일 몸을 씻지 않으면 몸이 질병에 노출되고 마침내 생명을 위험하며 끝내 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도 이와 다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삶도 매일 씻지 않으면, 결국 씻지 않은 몸의 행로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증거가 바로 저 자신입니다. 제가 가졌다고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다 잃은 저를 보십시오. 절망의 바닥으로 처박혔던 저를 보십시오. 그래서 저는 감히 ‘희망의 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삶의 밖으로 나갔던 까닭에 제 삶의 실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절망의 바닥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죽음만이 삶을 볼 수 있게 하는 전망대이고, 절망의 심연이 희망의 원천이라는 것은 실로 경이롭습니다. 제가 감히 ‘희망의 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대전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처럼 지뢰밭을 밟은 뒤,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자신의 마음과 삶을 비로소 바라보는 어리석음을 막고 싶습니다. 굳이 저처럼 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잘 다져진 평안한 길을 안다면 굳이 자갈밭으로 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아는 길이 고작 자갈밭일 때가 아니면 누구라도 자갈밭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 길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길은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 그 길을 가장 잘 알기 마련입니다. 저는 자갈밭에서 자빠져 온 몸이 깨졌던 과거를 가졌습니다. 저는 가시덤불을 헤쳐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저 자갈밭과 가시덤불의 안팎을 낱낱이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 죽음의 길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막아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저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박은 우리들 아닙니까. “그것은 빌라도의 짓이다. 그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짓이다.” 라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 모두가 공모한 짓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 없었다면 예수님의 대속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고 못박은 사람들은 그들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대속의 제물로 삼은 것은 바로 우리이고 우리의 죄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로 예수님을 대속의 제물이 되게 하였다는 통렬한 회심이야말로 우리를 죽음에 이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나는 죄가 없다!”고 소리치는 어리석은 똑똑이들을 참다운 죄인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합니다. 그들을 진짜배기 현자가 되는 길을 함께 가고 싶습니다. 바로 제가 어리석은 똑똑이의 ‘대표선수’였기 때문에 저는 그들을 진정 돕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청개구리입니다. 우리가 청개구리가 아니라면, 청개구리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비만 오면 울어대는 청개구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틈만 나면 한 눈을 팔다가, 엄마 손을 놓치고, 마침내는 낯선 동네에서 울고마는 어린 아이와 같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시라도 우리 자신에게서 눈을 떼면 아니 됩니다. 쉼없이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정말 심각하게 자기를 바라보고 지키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졸음에 지고마는 존재입니다. 베드로조차도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결코 그러지 않으리라고 자신만만했건만 끝내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청개구리들에게는 우리를 졸지 않게 하는 죽비가 필요합니다. 한 눈을 팔다가도 결국 되돌아오게 하는 끈도 필요합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희망의 소리’는 죽비이고 끈이 될 것입니다. 헛된 꿈에 취해 깊은 잠에 빠졌던 저는, 한 눈 팔다가 끝내 길을 잃고 대성통곡하며 혼비백산했던 저는, 그 죽비와 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리하여 세상의 형제자매들에게 저는 그것을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재가 된 다음에야 삶의 실상을 볼 수 있습니다. 무너져버린 제 삶의 잿더미에서 저는 삶의 실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제게 말했습니다. 살아있는 그 자리가 바로 제 죽음의 자리라고요. 누구나 지금 서있는 그 자리가 자신이 죽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헛된 삶이 아닌 참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늘 자신이 서있는 그 자리를 참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헌 살림을 버리시고 새 살림을 장만하십시오. 그것의 출발은 오늘부터 제가 전하고 싶은 ‘희망의 소리’일 수 있습니다. ‘희망의 소리’에 관심 갖고 경청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희망의 소리’는 듣기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언제나 어느 곳에나 다가갈 것입니다. ‘희망의 소리’는 마음과 삶의 이동식 목욕탕이 되고자 합니다. 그간 이 못난 사내의 참회록을 지루함 마다 하지 않으시고 읽어주신 분들게 큰 절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8월 21일 김종찬(전 KBS 집중토론 사회자, ‘희망의 소리’ 대표)

그 동안 김종찬의 <내가 만난 하나님> 시리즈에 엄청난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김종찬 선생은 이 시리즈를 통하여 거듭났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나와 눈부신 빛의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고 합니다. 더도 덜도 말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장르의 글쓰기를 통하여, 세상과 독자 여러분들과 아름다운 동행의 여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대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