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다이빙 도전하는 사지마비 김헌주씨 “난 꿈이 있어 행복한 사람”
입력 2010-08-20 18:28
먹먹했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물속에서 살아 있는 의식은 한 가닥이었다. 입과 코로 들어오는 물을 뱉어낼 수가 없었다. 죽음을 생각하던 순간 물 위로 건져졌다. 허공에 머리만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지난 18일 서울 방배동에서 김헌주(28·사진)씨가 되살린 5년 전 사고 당시 기억이다.
◇사고=김씨는 2005년 8월 경남 창녕의 한 실내 수영장에서 목뼈가 부러졌다. 수심을 생각하지 않고 물속에 뛰어든 탓이었다. 성인 남성 가슴 깊이의 물은 다이빙하기에 얕았다.
부산대병원에서 17시간 만에 수술이 끝났다. 골반에서 떼어낸 뼛조각을 으스러진 목뼈에 맞춰 넣었다. 중환자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을 떴다. 목구멍 깊숙이 호흡기가 삽입돼 있었다.
그날 이후 김씨는 쇄골 아래 근육을 쓰지 못한다. 목뼈가 부러지면서 그 속을 지나는 신경(척수)이 끊어졌다. 어깨 근육과 이두박근(알통)으로 두 팔을 움직이지만 손가락을 구부리지 못하고, 팔 뒤쪽 근육이 마비돼 굽힌 팔을 다시 펴지 못한다. 김씨는 처음 석 달간 병상에 누워 천장만 쳐다봤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수영장에서 물에 뛰어들었을 뿐인데 한순간 사지를 잃었다. 미칠 것 같았다. 두 달쯤 지나 비로소 체념했다. 되돌릴 수 없었다. 다 큰 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의연하게 살아야 했다.
◇재활=2005년 11월 의사가 말했다. “앞으로 걸을 수 없을 겁니다.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합니다.” 김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말없이 주무르고 있었다. 손등으로 어머니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김씨는 어머니 앞에서는 차마 울 수 없었다. 목뼈가 어느 정도 붙고 재활치료에 들어갔다. 남의 도움 없이는 한발도 움직이지 못하는 몸은 세상에 내팽개쳐진 듯했다. 어금니를 물고 훈련했다. 양손바닥을 이용해 혼자 씻고, 옷을 입고, 대소변을 보는 요령을 터득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운전면허도 땄다. 실기인 기능시험에서 8번째 합격했다.
다니던 한국해양대를 휴학했던 김씨는 2007년 5월 진로를 바꿨다. 병원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숙제를 봐주면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다. 고등학교 교과서부터 다시 샀다. 학원에 갈 수 없어 EBS 강의를 들었다. 같은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던 여대생이 공부를 도왔다. 그가 김씨에게 챙겨준 자료는 A4 용지로 100장이 넘었다. 김씨는 이듬해 수능시험을 치렀다.
◇도전=경인교대에 지원했다. 장애인 대상 특별전형이었다. 면접을 보러 간 학교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다른 수험생은 어떤 장애를 가졌는지 모를 정도로 건강했다.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은 사람은커녕 절뚝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김씨는 1번 수험생이었다. 면접장이 있는 2층까지 친구에게 업혀 올라갔다. 며칠 뒤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 다음 지원한 부산교대에서는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주고 싶은데 아직 여건이 여의치 않아요. 지금은 떨어지지만 4, 5년 뒤 김헌주씨 같은 학생이 올 때 받아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 학교 모두 휠체어를 탄 학생이 면접을 보러 오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대신 성균관대에 입학했다. 고향인 부산에서 지난해 상경했다. 혼자 살면서 차를 몰고 등하교한다. 교내는 가파르다. 강의실을 찾아 건물을 옮겨 다닐 때마다 차가 필요하다. 첫 학기를 마치고 나니 몸무게 6㎏이 빠졌다.
김씨는 지난해 8월부터 국립재활원과 장애인인식개선교육센터 ‘어울림’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초·중학교에 가서 학창시절과 군복무 당시 사진을 보여주며 사고 경험을 소개한다. 지난 7월부터는 사회복지기관에 배치되는 공익근무요원의 소양 교육도 맡았다.
◇행복=긴 이야기에 목이 탔는지 김씨는 두 손바닥을 모아 컵을 집어 들었다. 능숙했다. “가수 강원래씨가 하반신을 다쳤을 때 ‘저러면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보면 강씨는 저보다 상태가 좋잖아요. 그런데 다 살게 되더라고요.” 웃으며 말하는 김씨는 다치기 전만큼 행복하다고 했다.
20일 김씨는 같은 학교 조재헌(20)씨와 호주 탐방을 떠났다. 조씨는 강의를 함께 들으며 사귀었다. 두 사람이 9층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날이 있었다. 조씨는 김씨를 업고 출구가 있는 5층까지 걸어 내려갔다. 두 사람은 굳은 각오로 이번 탐방을 준비했다.
이들은 현지 장애인 생활체육 실태를 살펴보고 경비행기 조종과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한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비용을 댄다. 출국 전 김씨는 바랐다. “장애를 얻은 사람은 자신감을 상실합니다. 제 여행은 작은 도전이지만 단 한 명의 장애인에게라도 자극이 되면 좋겠습니다.”
글·사진=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