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증인 이핑계 저핑계 거부… 맥빠진 청문회
입력 2010-08-20 23:48
‘8·8 개각’에 따른 국회 인사 청문회에 주요 증인으로 채택된 인사들이 대부분 출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는 24~25일 예정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측근을 통해 사실상 출석 거부 의사를 전했다. 장시간 앉아 있을 만한 건강상태가 아니라는 게 이유다. 박 전 회장 부탁으로 김 후보자에게 돈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는 곽현규 뉴욕 한인식당 사장은 개각 명단이 발표된 지난 8일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곽 사장에게는 출석 요구서도 전달되지 못했다.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과 우병우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역시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와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노 지검장은 아직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만큼 국회에서 언급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쪽으로 결론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은 검찰 간부가 수사를 했거나 수사를 맡고 있는 사안에 대해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불출석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후보자 청문회 전날인 23일 노 지검장과 우 기획관의 불출석 사유를 일괄적으로 밝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을 경우 불출석 사유서는 청문회 시작 이전에만 제출하면 된다”며 “개인적으로 이유를 밝히는 것보다는 검찰 차원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증인으로 채택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출석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실제 출석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현직을 떠난 만큼 검찰 기류와는 상관없이 출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검찰에 부담을 주는 행동은 자제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 전 부장의 증인 출석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부장이 국회 증언대에 서면 앞으로 검사 재직 시절 주요 수사내용이 퇴직 뒤 모두 공개될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된다”고 말했다. 당초 출석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던 이 전 부장 역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총리 인사청문특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증인들에 대한 동행명령권 발동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23일 개최하자고 요구했다.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 청문회에는 오동섭 대우조선해양건설 고문만 출석 의사를 통보했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연락두절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고,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해외 계약 체결 업무를 이유로 출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의 증인으로 채택된 이연용 일신 E&C 대표이사는 출석 여부를 알려오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항명 사건으로 파면된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은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에 출석하겠다고 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증인이 인사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아 기소됐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 처벌받은 경우는 지난해 정운찬 총리 청문회 당시 김동녕 예스24 대표와 2007년 한덕수 총리 청문회 당시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우주하 재경부 국장 등 3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김 대표만 200만원 벌금형을 받았을 뿐 김 전 장관과 우 국장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용훈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