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사랑한 시인 윤동주… ‘민족’ 울타리에 가두지 말라
입력 2010-08-20 17:49
허정 부산대 교수, 학술총서 ‘고전…’에서 주장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는 윤동주(1917∼1945)의 시가 민족이라는 구심점에 묶인 항일 저항시로 소개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해의 폭을 좁히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HK 연구교수인 허정씨는 최근 발간된 학술총서 ‘고전, 고전번역, 문화번역’(미다스북스)에서 “윤동주의 시가 저항시로 정전화(正典化)하는 과정에는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한 계급주의 사상의 억압, 반일주의로 인한 윤동주의 희생 부각, 학교 교육을 통한 재생산이라는 사회적 영향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는 민족주의에 환원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한다”고 밝혔다.
윤동주 시집은 1948년 유족들에 의해 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유일하지만 2009년 10월 1일 기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검색어로 검색된 단행본은 14종, 윤동주에 대한 학위 논문은 230건, 학술지에 실린 글은 317건에 달하는 등 한국문학사와 문학교육의 주요한 시인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폭넓은 수용에 비해 그의 시가 민족의식을 근간으로 하는 저항시로 해석되고 있는 건 한국사회의 특정집단의 이익과 관심에 의해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윤동주의 시에서 저항의 근거를 강박증적으로 찾아내려는 현상 이면에는 우선 사회주의를 억압한 반공이데올로기의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민족과의 저항을 전면에 내세워 자국 내의 정치적 모순을 은폐하려는 반일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나아가 ‘윤동주의 시는 저항시’라는 담론을 지식의 형태로 확대 재생산한 학교교육의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60년대 후반 학계에 조명된 윤동주의 시가 저항시의 앞자리에 기술된 데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강한 억압 하에 저항시의 전형으로 삼을 만한 작가들이 부재했던 ‘저항시 공백현상’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카프와 조선문학가동맹 작가들에 대한 연구나 독서가 해방 이후 오랫동안 법으로 금지되어온 데 기인한다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는 일제 당시 사회주의 계열의 문학인들이 반공이데올로기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동안 대표적인 저항시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반일주의와도 관련된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 실험에 의해 젊은 나이에 희생된 윤동주의 죽음을 일제에 대한 저항을 주도하다가 ‘순교한 죽음’이라고 강조함으로써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각하고 지속적으로 조장해 왔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논점은 학교 교육을 통한 윤동주 시의 정전화 과정이다. 윤동주의 시는 중등 5차 교육과정 8종 문학교과서에서 7차례나 선정된다. 6차 교육과정 18종 문학교과서에서는 5편의 시가, 7차 교육과정 18종 교과서에서는 7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렇듯 그의 시는 국어와 문학 과목에서 중요한 정전으로 올라와 있는 것이다. 이는 윤동주의 시가 의도적으로 ‘창조된 고전’이라는 개연성을 보여준다.
허 교수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중략)/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는 윤동주의 ‘서시’를 인용하며 윤동주의 시는 민족에 대한 걱정과 민족해방으로 수렴되기보다 민족을 넘어서는 더 큰 공동체를 향해 열려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는 시구에는 민족을 넘어 적국 일본인마저 사랑하는 박애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국경의 문턱이 낮아진 오늘날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다른 민족과 소통하며 살아갈 연대의 자세가 절실한 상황에서 윤동주의 시를 민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둬 박제화하고 기념비적으로 보존할 게 아니라 그 울타리를 열어 현대적이고 세계적인 의미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