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상처 드러낸 고백… 김도연 신작 소설 ‘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

입력 2010-08-20 17:49


학교를 벗어나는 게 인생의 해방이었을 것만 같던 시절, 반성문을 써본 사람이 적지는 않을 게다. 그러나 반성문을 그 후의 인생에까지 안고 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거기 얼기설기 쓴 글은 반성이었을까, 변명이었을까, 반항이었을까. 김도연의 신작 ‘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문학과지성사)’은 오래 전 잊혀졌던 기억들(학교 가는 길, 버스 정류장, 커닝과 표절, 첫사랑)을 부끄러움과 함께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삼십년 전의 반성을 삼십년 후 풀어놓은 소설가의 자기 고백이다. 정확한 실명이 나와 있지 않은 주인공 ‘김00’은 중학교 2학년 때 학생잡지에서 본 글을 교내 백일장에 옮겨 썼다가 담임선생님께 발각된다. 선생님은 소문을 덮는 대신 제자에게 원고지 500장 분량의 반성문을 쓰는 벌을 준다. 열다섯 소년에게 500장의 반성문은 턱없이 과도했고, 소년은 결국 반성문을 쓰지 못한다.

소설가가 된 소년은 삼십년 후 간암에 걸린 선생님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제야 반성문을 쓴다. 삼십년 뒤에도 소설가는 반성인지 자기변명인지 반성을 가장한 회고록인지 불분명한 반성문을 잡고, 부끄러움 앞에서 낑낑댄다.

‘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은 구령대 위에서 큰 목소리를 내며 웅변하기 좋아하던 소년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며 성장하는 성장소설이자 중년에 이른 문인이 오랜 세월 묵직하던 마음의 짐을 털어낸 자전소설이다.

자신의 미숙한 언행이 스스로에게 상처로 남은 경험 하나쯤 누구나 갖고 있다. 그 생채기를 외면하기도 잊기도 하며 옛 시절의 순수를 잃어버리는 것이 인간이기에, 제자와 스승이 과거를 돌이키며 자신들을 얽어맸던 자책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과정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소설가가 케케묵은 자책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무렵 목련꽃 피는 계절은 지나간다. 그리고 스승도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한다.

솔직한 반성과 돌아봄은 소설가로 하여금, 자신이 봄날 흐드러진 목련꽃처럼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평범한 존재임을 인정하게 하고, 삶을 묵묵히 긍정하는 인식에 이르게 한다. “발자크나 스탕달의 시대에 다른 작가들이 과연 없었겠냐고. 그 시대에도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고 있었다고. 다만 시간이 흘러 후세의 사람들에겐 발자크나 스탕달만 남아 있는 거라고…. 저 또한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사라지는 소설가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168∼169쪽) “이것은 자기비하도 아니고 현재를 포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글을 쓰는 한 저는 제게 주어진 모든 조건의 최전선에서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가 제 글을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169쪽)

생이 결국 반성이나 변명으로 점철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묵묵히 우리가 갈 길을 가는 수밖에 없다. 기억 속의 어느 것 하나 하찮게 여기지 않고, 부끄러움은 부끄러움대로 간직하며.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은 담백한 만큼이나 잔잔히 울리는 여운을 남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