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란 제재 수위, 美·이란과 각각 협의”
입력 2010-08-20 18:20
정부는 미국의 이란 제재법 시행명령이 제정됨에 따라 조만간 미국, 이란과 각각 제재 수위에 대한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미국이 지점폐쇄를 요구하는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찾아내고 2개월 이내 영업정지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파급력이 큰 만큼 양쪽을 달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미국의 이란제재 시행명령이 만들어진 만큼 우리의 대응방향에 대해 미국, 이란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며 “미국, 이란과 빠른 시일 안에 협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제재와 관련해선 “광범위하게 대책을 논의했다”며 “하지만 현재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란 중앙은행 부총재는 지난 17일 한국을 방문해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관계자들을 만나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우리 측의 독자 제재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 어떤 조치를 할지 결정된 게 없다”며 “협의하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액션이 논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최근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정기검사 과정에서 외환거래법상의 ‘지급영수지침’ 위반 혐의를 확인했다. 국제 금융제재 대상자와 거래할 때 사전에 한국은행 총재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이를 어긴 것이다. 하지만 은행 건전성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은행법을 적용해 영업점을 폐쇄하기는 어렵다. 다만 외환거래법상 업무정지 2개월 또는 위반한 임직원에 대해 3년 이하 징역이나 3억원 이하 벌금조치를 내릴 수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일시적으로 외국환거래를 제한하는 조치를 검토 중이다.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경우 수출입금융에 특화된 성격상 외국환업무가 정지되면 사실상 지점 폐쇄에 맞먹는 효과를 낸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대북공조를 취해야 하는 미국을 달래면서 동시에 이란과 거래하는 국내 기업들의 피해상황 등을 고려한 고육지책이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미국에 문제제기도 하고 우리 경제에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6월 4차 대이란 제재결의안을 통과시킨 뒤 유럽연합(EU) 27개국과 호주 캐나다 일본 스위스 등 30여개국이 독자적인 이란제재안을 내놓고 있다. 스위스는 19일 자국 내 이란 관련 계좌에 있는 150만 스위스프랑(140만 달러)을 동결조치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명희 김찬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