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동수] 한 목회자의 위장전입 고백
입력 2010-08-20 17:35
한 중진 목회자가 자신의 위장 전입으로 고통 받은 과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교회 개척 초기 재테크에 밝은 한 장로로부터 “수도권 요지에 싼 땅이 나왔으니 사놓았다가 나중에 성전을 건축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 만 그 땅을 사기 위해선 주민등록을 거짓으로 옮겨놓아야 했다. 그 사실이 찜찜해 망설였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는 장로의 거듭된 권유에 결국 매입했고 전입 신고도 마쳤다.
그런데 그것이 이후 그에게 엄청난 심적 고통을 안겨줄 줄은 몰랐다. 주민등록등본을 뗄 때마다 위장전입 기록은 그를 부끄럽게 했다. 물론 그 사실은 자신과 땅 매입을 권유한 장로 외에는 모르는 일이었다.
얼마 후 그는 땅을 되팔아버렸다.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을 때마다 밀려드는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장전입 기록은 전과기록처럼 계속 따라다녔다. 그 기록을 볼 때마다 “목사가 왜 위장전입을 했던가” 하며 가슴치며 후회했다고 한다.
그의 심적 부담은 1990년대 중반 주민등록이 전산화되면서 해소됐다. 위장전입 기록은 더 이상 주민등록등본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위장전입 사실이 기록되지 않은 깨끗한(?) 등본을 발급받을 때마다 그는 마치 죄를 사면받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 것은 어제 시작된 국회인사청문회 때문이다. 이번 청문회의 쟁점 하나가 위장 전입이다. 대상자 여럿이 위장 전입 의혹을 받고 있다. 한 명은 5번 위장전입한 흔적이 나타났다. 그런데도 당사자들은 사과 한마디로 마무리하려 한다. 이들을 추궁해야 할 의원들도 투기 목적이 아닌 위장 전입은 어물쩍 넘어가 주려는 모양새다. 사회적 합의 발언도 나왔다.
이런 분위기가 걱정스럽다. 투기 목적이든 자녀 진학 목적이든 불법은 불법이다. 지도층 인사들은 입만 열면 선진일류국가 진입을 말한다. 하지만 이처럼 법을 만드는 사람들부터 법을 경시하는 풍토론 어림없다. 선진국일수록 지도층에 대한 법의 잣대가 추상같이 엄격하다. 지도층은 성직자 못지않은 예민한 양심과 준법의식,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 청문회를 통해 위장전입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박동수 선임기자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