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맘 이선희씨, 집안의 친환경 삶이 즐겁다

입력 2010-08-20 17:58


“뭐야! 아직 열리지 않았네.” “그래요! 상추는 좀 자랐어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베란다로 나가 조롱박이 열렸나 확인하는 김민성(47·회사원·인천 간석4동)씨. 김씨의 어깨 너머로 상추 키를 확인하는 김씨의 아내 이선희(43)씨. 아이들도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끼어든다. “사랑초랑 내 화분들은 잘 있어요?” “그럼 잘 있겠지. 밤새 화분이 도망이라도 갔겠어?” 아들 승환(12·인천 석정초 5)이는 자기가 키우는 화분 안부를 묻고, 딸 미지(14·인천 석정중 1)는 그런 동생에게 슬쩍 퉁바리를 준다.

김씨네 가족은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나간다. 지난 7월 이씨가 ‘에코맘과 함께 하는 에코 아파트 만들기’에 참여하면서 베란다에 만든 텃밭과 화분들이 궁금해서다. 이 프로그램은 인천 YWCA가 여성가족부의 후원을 받아 인천 간석4동 우성아파트와 함께 펼치고 있는 ‘한 가정 탄소 1톤 줄이기 운동’의 하나다.

“손바닥만한 베란다에 플라스틱 상자 2개를 들여놓고 상추를 심었어요.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좀 창피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키운 상추로 삼겹살 파티도 몇 번 했는걸요.”

이씨가 자랑하자 승환이가 “슈퍼에서 산 상추보다 훨씬 맛있었다”며 새삼 입맛을 다신다. 미지는 “상추보다 방울토마토가 더 맛있었다”면서 “구문초는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에코맘이 된 이씨가 모기약을 뿌리는 대신 모기를 쫓아주는 구문초를 키우기 시작한 것. 독한 모기약을 뿌리지 않으니 건강에도 좋고, 모기약을 구입하는 비용도 들지 않으니 일거양득.

“유익한 미생물이라는 EM 용액 교육도 받았어요. EM 발효액으로 세탁과 설거지를 하면서 세제를 훨씬 덜 쓰게 됐어요.”

이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14층에서 EM 발효액을 쓰면 1층까지 하수 정화효과가 있다고 배웠다면서 환경 보호에 한몫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에코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아이들과 가족환경캠프에 참가하는 행운도 누렸다. 지난 10∼11일 남이섬을 다녀온 미지는 “친구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겨울연가 촬영지인 남이섬에 쓰레기를 재활용해 만든 정자와 타조 다람쥐 등 동물들이 뛰노는 생태공원이 있다는 것을 아마 친구들은 모를 것이라나. 승환이는 “우리가 만든 모기퇴치제를 발랐더니 정말 모기가 물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천연 버물리와 비누도 만들었단다. 미지 남매는 개학하면 친구들에게 들려 줄 이야기보따리가 하나 더 는 셈이다.

이씨는 에코맘 활동을 하면서 크고 작은 이익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가장 큰 수확으로 꼽았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지는 “엄마 잔소리가 무지 많아졌다”고 했고, 승환이는 “올해는 꼭 산다던 에어컨을 사지 않아 정말 더웠다”고 투덜댔다. 이씨는 가족들이 욕실에 들어가면 ‘물 아껴 써라’ ‘휴지 아껴 써라’ 등등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했고, “에어컨은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오니 선풍기로 만족하자”며 달랬던 것. 이씨가 “정말 그랬구나. 미안하다”고 하자 미지는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승환이도 “엄마가 왜 그러시는지 아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에코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이웃들과도 부쩍 친해졌다”면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시어머니가 만들어 준 누렇고 못생긴 빨래비누 덕분이라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안 썼어요. 어쩌다 걸레를 빨았는데 때가 너무 잘 지는 거예요. 그래서 쓰기 시작했죠. 이제 다른 비누는 못써요.”

이씨와 같은 아파트 옆동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 하숙이(73)씨는 20여년 전부터 폐식용유로 빨래비누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나눠 쓰고 있다. 요즘엔 남편 김흥택(76)씨와 함께 주말농장을 하면서 과일껍질, 흑설탕 달걀 식용유 등으로 친환경비료를 만들어 쓰고 있다. 환경사랑도 대물림되는 모양이다. 미지와 승환이는 나중에 이씨보다 더 잔소리가 많은 ‘에코맘’ ‘에코파파’가 되지 않을까.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