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은행 무더기 제재…‘키코 분쟁’ 3년, 은행 잘못 인정했다

입력 2010-08-20 01:47

3년여를 끌던 ‘키코 분쟁’에서 처음으로 은행 잘못이 인정됐다. 금융감독원은 19일 9개 은행이 감독규정을 어기면서 과도하게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를 팔았다고 봤다.

이번 제재 결정은 수출 중소기업이 시중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키코 피해기업은 517곳(대기업 46곳, 중소기업 471곳)에 이른다. 피해금액 3조3528억원 가운데 중소기업 피해액이 2조4000억원이다.

다만 은행 책임이 부실판매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건전성 측면에서 봤을 때 무리하게 상품을 팔았다는 것이지 키코 불완전 판매, 은행 폭리 등과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키코 피해기업들도 제재 결정을 환영하면서 징계 내용에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릐은행 책임 일부 인정=금감원은 3가지 측면에서 은행들이 감독규정을 위반했다고 봤다. 우선 은행들이 수출 중소기업에 키코 외에도 스노볼 등 고위험 파생상품을 판매하면서 위험을 키웠다고 판단했다. 키코는 외환을 팔 때 행사가격이 정해져 있지만 스노볼은 환율이 오르면 행사가격이 하락해 손실이 더 커지는 상품이다.

또 금감원은 키코 계약을 할 때 오버헤지(수출로 받는 외환 규모 이상으로 헤지를 하는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연간 수출액을 초과하는 규모로 환 헤지 계약을 맺어 기업의 피해가 더 커지게 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금감원은 이와 함께 손실이전거래(과거 상품의 손실을 신규 상품으로 옮기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은행들이 이를 어겼다고 결론 내렸다. 키코 계약으로 중소기업들이 손해를 보고 도산 위기에 처하자 은행들은 손실을 다른 상품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원·달러 환율이 내려가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봤지만 실제로는 기업 부담만 더 늘었고, 은행도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다.

금감원은 2008년 8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14개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키코 등 통화옵션 거래 실태를 조사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9월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해당 은행 제재안을 논의했지만 소송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심의를 보류했었다.

릐‘후폭풍’ 부나=은행권은 후폭풍을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키코 피해 기업이 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만 118건에 이르는데다 추가로 집단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키코 본안소송 첫 재판에선 법원이 은행 손을 들어줬지만 이번 제재로 판결이 뒤집히진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개별은행과 업체 간 소송은 이번 행정조치와 별개 사안이라고 본다”면서 “제재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한 뒤 대응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금감원이 앞으로 고위험 파생상품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나서자 억울함도 호소했다. B은행 관계자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상품을 판 것도 아니고 충분히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은행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C은행 관계자도 “어차피 키코 사태 이후 리스크가 큰 상품은 거래 자체가 끊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뒤늦게라도 제재 결정을 내린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징계 내용은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중기중앙회는 앞서 키코 계약 프리미엄 가격표 조작에 대해 조사해 결과를 공개해달라고 금감원에 건의했다.

김찬희 강준구 문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