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현대그룹 딜레마

입력 2010-08-19 22:59

‘괘씸하기는 한데 귀한 손님 내쫓을 수도 없고….’

현대그룹을 바라보는 채권단의 심기가 복잡하다. 재무개선 약정을 거부하며 소송까지 낸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전폭적으로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약정 거부는 괘씸하지만 자칫 현대·기아차그룹이 독주할 뻔했던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여한 것은 매각 흥행이나 적정가격 책정을 위해서도 다행이라는 의미다. 현대그룹 채권단이 대부분 현대건설의 채권단(주주협의회)인 까닭에 벌어진 상황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19일 “한쪽에서는 싸워야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객관적인 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난감하다”면서 “그래도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입찰에 참여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대그룹의 약정 체결 거부가 현대건설 매각 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채권단은 약정을 맺더라도 현대건설 인수 참여 시 불이익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약정을 체결하지 않으면 감점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다.

반면 현대그룹 측은 약정을 맺을 경우 사실상 인수에 실패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게 되면 현대건설 인수 자격 자체가 박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 주역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 8.3%를 갖고 있는 데다 옛 ‘현대왕조’의 적통이라는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현대·기아차그룹과 현대그룹의 집안싸움이 가열되는 상황이다. 매각 추정가는 3조5000억원 정도인데 현대·기아차그룹은 계열사 포함 약 5조원을, 현대그룹은 1조3000억원 정도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강준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