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매미를 위한 변호
입력 2010-08-19 19:23
여름철 우리집은 자명종이 필요없다. 새벽 5시 조금 지나면 매미들의 합창이 울려 퍼진다. 바리톤부터 소프라노까지 다양하다. 솔리스트가 있고 협연자도 있다. 야근하는 자도 있는지, 밤 12시에 울어대기도 한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엄청난 굉음이 나올까 싶어 집안으로 대시하는 한 놈을 붙잡아 들여다봤다. 날개는 단순하되 얼굴은 오묘했다. 곤충학자 이영준 박사에 따르면 매미의 발음기는 진동막, 발음근, 공기주머니로 구성돼 있다. 울음은 발음근이 진동막을 힘차게 진동시키면서 생긴다. 발음할 때 배속의 공기주머니를 늘려 울림을 극대화한다. 소리는 주름진 배딱지와 복부 사이의 틈에서 퍼져 나온다.
우는 놈은 수컷이다. 암컷은 벙어리다. 매미가 우는 것은 한가로이 여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함성이다. 울음의 종류도 많다. 먼저 ‘유인음’. 암컷을 꼬드기는 유혹의 소리다. 짝짓기는 소리가 같은 종류끼리 이뤄지므로 구성진 소리로 어필하는 것이다. ‘공격음’도 있다. 한꺼번에 많은 소리를 내면 사냥하려는 새들에게 겁을 준다. 천적에게 위협을 주기 위해 ‘교란음’을 내기도 한다.
소리는 풀벌레 소리처럼 가는 것도 있고, 호주산 매미처럼 120dB에 달하는 것도 있다. 부부젤라가 127dB이니 크기를 짐작할 만하다. 도시 주민에게 짜증을 안기는 말매미 소리는 공사장 소음과 비슷한 80dB이다.
매미의 발성은 체온과 조도의 조건에 따른다. 체온은 15도부터 18.5도 사이에 이르면 울음의 조건에 이른다. 밝은 조도가 울음소리를 유도하기도 한다. 어떤 매미는 온도가 떨어지면 울지 않고, 또 다른 매미는 밤이 되면 조용해진다. 말매미는 더운 것을 좋아하는 남방계열의 종이므로 이들이 번성하는 것은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
늦여름이 되면 매미는 가는 세월이 아쉬워 더욱 소리 높여 울어댈 것이다. 그러나 매미가 사납게 우는 것은 심술이 아니라 환경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이니 시끄럽다고 매미에 대고 욕할 일은 아니다. 겨울이 되면 태양과 더불어 소리의 향연을 펼치던 매미가 그리워질 것이니 소음 타령은 그만 하고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매미 시 한 수 감상함이 어떨지. “가냘파 피리소리 아니고, 맑아 현의 소리와 같다. 찢어질 듯 부르짖다 오열하고, 처절하게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진다. 한 가지 소리를 토해내 율을 맞추기 어려운데 다섯 음의 자연스러움을 함축했구나.”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