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피 줍던 사격장, 이젠 관광자원으로… 포천 주민들, 軍과의 힘겨운 동거

입력 2010-08-19 18:16


포천의 군사시설은 주민들에게 갖가지 피해를 안겼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생활의 터전을 제공한 것도 군대다. 4만6000명에 달하는 군인과 이들을 면회 오는 가족들은 포천 시내에서 지갑을 열었다. 경제 상황에 따라 소비 수준이 변하는 민간인과 달리 군인들의 씀씀이는 언제나 일정했다. 1997년 외환위기도 포천 군사시설 인근의 상업 지역만은 비켜갔다.

20년 전만 해도 사격장에 몰래 들어가 탄피를 주워 생계를 이어간 사람이 많았다. 불발탄을 만지다 사격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쳤지만, 가난한 이들은 목숨과 탄피를 맞바꾸는 위험을 감수하며 먹을거리를 구했다. 그래서 포천 주민들에게 군대는 숱한 피해의 원천이면서 생활고를 해결해 준 애증의 대상이다.

목숨과 탄피를 바꾸는 사람들

관인면 문암마을. 이곳에서 일부 주민들은 최근까지 탄피를 주우러 다녔다. 그러다 지난 6월 5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연천군 부곡리 다락터 사격장에 대형트럭을 몰고 가 탄피 3t을 주워 나오다 현장에서 들킨 것이다. 경찰은 군용물 절취 혐의로 A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 17일 문암마을 자택에서 만난 A씨는 손사래 치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몇 달 전만 해도 사격장에 들어가는 걸 군에서 전혀 제지하지 않았어요. 일반인 출입을 막는 철조망도 없었고, 군인들이 우리 보면 탄피 던져 주고 그런 적도 꽤 있었고요.” A씨는 수거한 탄피를 ㎏당 500원씩 고물상에 팔았다고 한다.

이런 삶의 역사는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빈집들 사이로 10여 가구만 남아 있지만 당시엔 100가구가 넘을 만큼 북적댔다. 이곳 사내들은 포 소리만 끝나면 다락터 사격장으로 향했다. 마을에는 이들이 주운 탄피를 전문적으로 사들이는 고물상도 있었다.

정사성(72)씨도 20년 전까지 사격장에 다녔다. “애들 쪼그맣고 당시만 해도 먹고 살라면 어쩔 수 없었지. 기술이 있어? 뭐가 있어. 몇몇이 포탄 줍다가 죽었지만 기억도 안나. 어떻게 다 기억해. 죽은 사람 자식들은 다 이곳을 떴어.”

정씨는 애써 죽은 이들을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불발탄이 터지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시신이 찢겨 사격장에 놔두고 오는 수밖에 없었다. 장례도 치를 수 없었다. 탄피를 줍다가 사격 소리라도 들리면 등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부리나케 도망쳐야 했다. 간혹 사람이 죽으면 며칠 사격장 가는 발길이 뜸했지만 돈이 떨어지면 또 사격장으로 걸어가곤 했다.

신정녀(73)씨도 젊은 시절 세 살 된 딸을 업고 사격장을 다녔다. 사격장에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지게로 그늘을 만들어 딸을 뉘였다. 탄피를 줍다가 아이가 울면 달래고, 다시 탄피를 찾아 사격장을 헤맸다. “엄마, 나 거기 무서워. 안 갈래.” 어린 딸은 사격장에 가길 싫어했지만 집에 혼자 놔둘 순 없었다고 했다. “지금 딸이 쉰 살이야. 사격장에서 애가 흙도 집어 먹고, 거기에 뱀도 나타나고 그랬는데, 지금도 그 얘기만 하면 딸이 얼굴을 찌푸려.”

지역경제 살리려 ‘군사관광’도

포천은 군사도시다. 84개 부대와 영평·승진·원평사격장 등 3개의 사격장이 있다. 포천시 전체 면적의 29%인 239.84㎢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다. 이 땅엔 공장을 지을 수 없다. 개발할 수도 없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군인들을 위한 상업시설이다.

일동면 화동로는 한때 포천에서 가장 잘 나가던 상업지역이었다. 육군 8사단과 5군단 인근에 있는 일동 시가지는 밤마다 지나다니는 군인들로 거리가 들썩였다. 술집, 숙박업소, 다방, 당구장부터 명찰과 철모 등을 파는 군인백화점까지 호황이었다. 외환위기 때도 불황을 몰랐다.

그러나 군 복무기간 감소, 개인화된 군대 문화, 위수지역(소속 부대의 작전범위로 외출 시 벗어나선 안 되는 구역) 확대로 일동 시가지는 점차 죽어갔다. 위수지역이 포천 외곽지역까지 확대되자 군인들이 굳이 일동면에서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1시간이면 도착하는 동서울로 갔다.

이곳에서 13년째 다방을 운영하는 이모(57·여)씨는 90년대 초반까지 10평 남짓한 다방에 군인들이 꽉 차 있었다고 회고했다. “군인들이 돈을 잘 쓰잖아요. 딸린 식구 없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손님의 절반 가까이 군인이었는데 지금은 아예 사람이 안 와요. 다방이 23개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14개밖에 안 돼요. 저도 장사 접을까 했는데 어쩌겠어요. 그냥 해야지.”

15년째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3년 전 6층 여관 건물을 내놨다. “옛날에는 휴가가 짧으니까 부모들이 포천에 왔지만 지금은 휴가가 많잖아요. 애들이 아예 집에 가죠. 포천에서 할 게 뭐가 있어요? 공장을 마음대로 지을 수도 없고 땅도 척박해요. 군대 장사로 먹고사는 건데 이것마저 잘 안 되니…. 하루에 손님 몇 명 오냐고요? 묻지 말아요. 건물 팔리면 금방 떠날 겁니다.”

최근에는 쇠락하는 지역 상권을 위해 관과 군, 그리고 기업이 손을 합쳤다. 현대아산과 포천시, 승진훈련장은 지난 4일 공지합동훈련을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국내 최초의 안보 견학이자 군사관광 상품이다. 영북면 산정리 승진훈련장에선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관광객들에게 훈련 장면을 보여준다. 입장료는 성인 1명당 1만1000원.

18일 오전 11시 승진훈련장. 관광객 400여명이 스탠드에 앉았다. 눈앞에는 가상의 적을 상징하는 타깃이 ‘가∼라’ 문자와 ‘1∼10’ 숫자로 표시됐다. 박격포 포성이 시작되자 공중에서는 500MD 헬기 3대가 타깃을 향해 로켓을 발사했다. 헬기는 관람객을 의식한 듯 스탠드를 향해 저공비행을 했고, 박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이어 전차 4대, 토우 미사일 등이 적을 향해 불을 뿜었다. 고막이 터질 듯 큰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20여분간 ‘공연 같은 훈련’이 끝나자 야외전시장에 각종 무기가 전시됐다. 관람객들은 직접 소총을 잡거나 전차에 올라탔다. 육군 8사단 임문택 소령은 “군대로 인해 피해를 받는 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안보 훈련이 주민들을 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 반응은 아직까진 시원찮다. 지역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느냐는 얘기다. 일동 시내에서 음반가게를 운영하는 이모(53·여)씨는 “관광객들이 훈련장에서 시내까지 넘어 오겠냐. 관람만 하고 금방 포천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겠냐”며 고개를 저었다.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아도, 먹고살기 힘들어도 이곳 상인들은 그래도 군대 덕에 먹고산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포천시민들이 탱크 때문에 지반이 약해진다고 데모를 했어요. 그래도 군인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데. 이곳 손님의 40%가 군인이잖아요. 데모하는 사람들한테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 달라고 부탁했어요.” 다방 주인 이씨의 얘기다.

오발탄, 분진, 소음, 환경오염…. 군대 때문에 정말 다양한 피해를 입고 사는 도시. 군인과 면회객의 소비가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어떻게든 군대를 이용해 살아보려는 도시. 두 얼굴의 도시 이름은 포천이다.

포천=글 박유리 기자, 사진 이동희 기자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