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자녀 펀드 月수익률에 관리비 내역까지 탈탈 턴다… 인사청문회를 청문회 하다
입력 2010-08-19 18:16
“허위사실뿐 아니라 미확인 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발언해서 착오로 빠뜨릴 우려가 있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제재 조치가 있어야 한다.”(민주당 천정배 의원, 2000년 6월 19일 국회 운영위 회의에서)
“(그런 조항을 법률에 넣는 건) 법을 만드는 우리가 국회 스스로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학적인 행위다.”(한나라당 김무성 의원, 같은 회의에서 천 의원 주장에 반박하며)
인사청문회법이 탄생한 2000년 6월, 법안에 힘을 더하려 애쓴 건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었다. 덕분에 인사청문회법은 강력해졌다. 이 법을 토대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이번 8·8 개각에 따른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다. 청문회는 20∼26일 국무총리·국무위원·국세청장·경찰청장 후보자 10명에 대해 이뤄진다.
시작
‘국회에 임명동의안 등을 제출할 때에는 증빙서류를 첨부하여야 한다.’(인사청문회법 제5조 1항)
증빙서류는 인사청문요청안에 첨부돼 국회에 도착한다. 청문회는 사실상 이때부터 시작이다.
서류는 다양하고 방대하다. 법은 다섯 분야에 대한 증빙서류를 요구한다. ①직업·학력·경력에 관한 사항 ②병역신고사항 ③재산신고사항 ④최근 5년간 소득세·재산세·종합토지세 납부 및 체납 실적에 관한 사항 ⑤범죄경력에 관한 사항.
①과 ⑤는 본인 것만 제출한다. 병역은 직계비속, 재산은 직계존비속 자료를 모두 제공해야 한다. 재산의 경우 직계존비속이 고지를 거부할 권리는 있다. 하지만 청문회 대상자들은 대개 직계존비속의 재산 현황도 모두 공개한다.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재산과 관련된 ③, ④ 항목이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은 기본. 보험·펀드·예금 등 금융사에 개설한 모든 계좌번호와 개설일, 잔고 현황, 금융사별 채무 발생일·만기일까지 공개된다. 자동차등록증, 공동주택가격확인서, 보험증권, 보유유가증권명세서도 포함된다. 말 그대로 재산에 관한 모든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실제 직계존비속 관계인지, 세금은 거주지에 제대로 납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계존비속 모두의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초본, 본인의 주민등록등본도 제공된다.
식구가 많을수록 서류량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딸 셋을 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된 기본 서류만 260쪽에 달한다.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는 200쪽,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도 150쪽 안팎이다.
기본 증빙서류만 들여다보면 위장전입, 부당공제, 세금탈루 등은 어렵지 않게 적발해낼 수 있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이런 의혹들이 단골로 제기되는 이유다.
공격
‘의결 또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기타 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제12조 1항)
전투는 이제부터다. 증빙서류로 기초조사를 끝낸 의원들은 자료를 요구한다. 해당 상임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못한다 해도 상임위 재적의원 3분의 1만 서명하면 언제든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여당 의원이 한 상임위의 3분의 2를 차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어떤 자료든 요구 자체는 어렵지 않다.
인사청문회법은 국회에 막강한 자료 제출 요구권을 부여하고 있다. 자료 제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법 테두리 내에선 거의 없다. 군사·외교·대북관계의 국가기밀에 관한 사항이거나 공개 시 가족이 형사소추를 당할 우려가 있는 자료 등만 제출하지 않을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의원들의 자료 요청은 줄을 잇는다. 신 후보자의 위장전입과 배우자 위장취업 의혹을 제기한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이 요구한 자료를 보면 국세청 8건, 금융감독원 4건, 금융결제원 1건, 문화부 49건, 행정안전부 4건, 국토해양부 2건 등 68건이나 된다.
문화부 차관 시절 관용차량을 운전한 기사 이름부터 국내외 출장 일정, 의심받고 있는 부동산 거래의 매매계약서 사본에 이르기까지 요구 자료는 다양하다. 신 후보자는 여야로부터 총 525건을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재오 후보자(732건),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789건) 등 의혹이 많고 주목받는 대상자일수록 자료 요구는 더 많다.
이런 자료는 해당 부처나 후보자들이 비교적 성실하게 내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감사 때는 버티면 넘어갈 수 있지만 청문회는 통과하려면 상임위 의원들의 협조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 관계자는 “100% 제출은 안 하지만 아예 ‘못 주겠다’ 이렇게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요구하는 자료들이 대개 개인 신상 관련 자료인데, 이건 당사자가 해당 관청에 가서 발급받으면 되는 것이다. 다른 변명이 잘 통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감한 자료 앞에선 어김없이 버티기가 등장한다.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은 국세청장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이 제기됐던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끝까지 제출하지 않았다. 관세청은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후보자와 가족의 국내 및 공항 면세점 구입 내역을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면세점에 요청하라”며 거부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실 김정엽 보좌관은 “가장 자주 하는 변명이 ‘그런 자료는 생성하지 않습니다’ ‘개인 정보라서 안됩니다’라는 것이다. 끝까지 버티면 달리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버티기와 불성실한 자료 제출에 대비해 의원들은 복수의 기관에 자료를 요청한다. 최근 10년간 부동산 구입 내역을 알고 싶다면 후보자에게 직접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국토해양부 국세청 등 다른 기관에도 관련 자료를 요구하는 식이다. 이용경 의원실 측은 “크로스 체크가 필수라 모든 자료를 여러 기관에 함께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방어
‘질의요지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해 인사청문회 개회 24시간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제7조 5항)
의원들은 청문회에서 던질 질문을 미리 상임위원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상임위원장은 이를 곧바로 청문회 대상자들에게 보내 답변 준비 시간을 준다. 하지만 법에 명시된 것처럼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청문회장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기 위해서다. 각 후보자 측은 이런 핵심 질문을 미리 파악하느라 진땀을 뺀다.
“주로 각 부처 기획재정담당관실 관계자들이 국회에 나와 있는데 슬슬 전화가 오기 시작하네요. 조금 더 임박해지면 사무실로 직접 찾아오겠죠. 청문회 전날엔 아예 의원회관에서 밤을 새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질의 내용을 보고하려고 하죠.” 지난 16일 김정엽 보좌관의 얘기다.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월 이한동 국무총리 서리를 대상으로 처음 실시됐다. 당시 청문회 대상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13명 전원,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국회 추천 3인, 중앙선관위원 중 국회 추천 3인 등이 전부였다.
2003년 1월 법이 개정돼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이 포함됐고 2005년 7월 장관 등 국무위원들까지 들어갔다. 현재 청문회 대상자는 55명이다. 미국은 차관보, 대사, 영사, 연방검사까지 포함해 모두 400여명이 의회 청문회를 거친다.
국회의 임명 동의가 필요한 자리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등 17개다. 이번 청문회 대상자 10명 중에는 국무총리만 임명 동의가 필요하다. 나머지는 청문위원들이 법적 구속력 없는 ‘의견’을 낼 뿐이다.
승패는 ‘여론전’에서 판가름난다. 야당이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방법은 부적격 요소를 찾아내 비판 여론을 조성하는 것뿐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 여론을 달래고 해명하는 입장이다. 결국 여론을 놓고 벌이는 한판 싸움이 인사청문회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