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연산군도 미술 애호가였다

입력 2010-08-19 21:19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손영옥/글항아리

‘몽유도원도’의 안견을 조선 최고의 화가 반열에 올려놓은 안평대군은 형 수양대군과의 권력다툼 끝에 35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으나 그림 수집가(컬렉터)로서는 많은 흔적을 남겼다. 안평은 10대 때부터 서화를 사 모았다. 신숙주의 ‘보한재집’에는 “비해당(안평대군의 호)은 서화를 사랑하여 누가 조그마한 쪼가리라도 가지고 있다고 들으면 반드시 후한 값으로 샀다. 그 중에서 좋은 것은 골라 표구를 해 소장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중국 회화 사상 최고봉인 고개지의 작품을 비롯해 당나라의 오도자·왕유, 송나라의 곽충서·이공린·소동파, 원나라의 조맹부·선우추·마원에 이르기까지 안평의 컬렉션은 국제적 방대함을 자랑한다. 소장품 전체 174점 중 136점이 중국 그림이다. 조선 화가로는 안견의 작품이 유일했는데, 30점이나 갖고 있어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한 안견에 대한 애정을 짐작케 한다.

성종은 ‘무일도(無逸圖)’ 등을 즐겨 보았다. 그림을 통해 군왕의 도리를 새기고 백성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성종은 예술 후원가로도 유명했다. 당시 인물화에 뛰어났던 최경이란 화가를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상관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았다. 이런 성종의 미술 애호는 아들 연산군에게 전수됐다.

폭군 이미지로 점철된 연산군은 정치와 글을 멀리하고 주지육림에 빠졌지만, 퇴폐와 일탈 끝에 미술 사랑이 똬리를 틀고 있다. 연산군은 ‘동산휴기도’ 같은 기생 그림을 즐겼다. “그림에는 그리기 쉽고 어려운 게 있는데, 기생을 데리고 동산에 가는 것 같은 그림이 제일 그리기 어렵다고 하더라. 화원들이 그린 것을 평가해서 직위에 반영하게 하라”고 할 정도로 미술에 애착을 가졌다.

숙종과 선조 등이 단순히 그림을 좋아했다면 정조는 화단을 주도하면서 시정의 미술문화까지 좌지우지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김홍도 이인문 이명기 신한평 김응환 김덕성 김득신 등은 정조의 ‘미술친위대’였다.

그림 수집으로 거지가 된 양반과 컬렉터 문화를 호되게 꾸짖은 연암 박지원, 조선 최대의 서화수장가였던 이조묵, 양반보다 뛰어난 감식안으로 조선후기를 뒤흔든 중인(中人) 컬렉터 김광국, 중국에서 소금 장사를 해 엄청난 부를 거머쥔 집안배경을 업고 비싼 고서화를 사모은 안기 등 조선시대 컬렉터들의 면면과 그림 수집 이면에 숨어있는 일화가 흥미롭다.

서화수장가 외에도 조선시대에 판쳤던 가짜 그림 논쟁, 당시 그림값에 대한 정보, 그림을 감상할 때 빼놓지 않고 봐야 할 제발(題跋)과 인장(印章) 등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국민일보 국제부 선임기자인 저자는 “그림 자체를 정말 사랑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대학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후에도한국미술과 중국미술에 대해 꾸준히 공부해 왔다. 이책은 그 결과물이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