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거수기 역할 더이상 못해” 한나라당 ‘政·靑, 주요 정책 일방적 처리’ 공개 반발

입력 2010-08-18 21:25


당·정·청 관계가 심상치 않다. 청와대와 정부는 여당과 사전 조율 없이 주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고, 한나라당은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형국이다. 당 내부에서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는 불만이 비등하고 있다.

18일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됐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당과 일절 협의 없이 발표한 행정고시 폐지 방침이 도마에 올랐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전문가를 채용할 경우 개인 스펙이 유리한 부유층에 유리해 소수 특권층을 위한 특채가 될 우려가 있다”며 “정부가 민심에 역행하는 일을 거의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친박계 이해봉 의원도 “국민과의 소통도 아니고 한나라당과의 소통도 아니고, 친위대 간 소통에 불과하다”고 동조했다.

청와대도 주요 현안을 한나라당과 협의 없이 발표해 여당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최근 이슈가 된 통일세 신설 논란과 관련, “당정 협의가 전혀 없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앞서 안상수 대표는 지난달 말 정부가 전기·도시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안을 발표하자, “앞으로 공공요금을 인상하기 전에 당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줄 것을 엄중히 요청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처럼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당·정·청 관계 개선은 늘 여당의 주요 이슈였다. 여론을 살펴 민심을 수용해야 할 당이 청와대와 정부의 일방적 요구에 끌려 다닌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여당 내부에서는 4대강 사업, 미디어관련법 등 주요 쟁점에서 정부 입장을 일방적으로 옹호해 강행처리에 급급했을 뿐,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주요 정책을 추진하거나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은 소외되거나, 사후 통보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며 “말로는 수평적 당·청 관계를 외쳤지만 실상은 당이 청와대에 종속됐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4·29, 10·28 재·보선과 올해 6·2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잇달아 참패하자 당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초·재선 의원들은 내각과 청와대의 인적쇄신 및 국정기조 변화를 요구하는 연판장까지 돌리며 집단행동에 나서기까지 했다. 권택기 의원 등은 지난 6월 “PD수첩 무죄 판결, 봉은사 외압 논란, 김제동씨 방송 하차 외압설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며 정부와 청와대를 비판했다.

하지만 당의 쇄신요구는 번번이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지난달 ‘대등한 당·청·관계를 정립하겠다’며 소장개혁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성식 의원은 지도부 진입에 실패했다. 오히려 7·28 재·보선에서 당선된 이재오 의원이 특임장관에 기용되면서 정부 입지가 강화되고 수직적 당·청·관계는 더욱 굳어질 거란 우려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실제 최근의 국정운영에서 당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당정 간 주요 정책 협의도 없고, 안 대표와 이 대통령이 월 1회 갖기로 한 정례회동도 발표 열흘이 넘도록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청와대 눈치를 봐야 하는 여당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 당직자는 “지도부는 일부 후보자들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통령 인사권이라며 한마디도 못하고 오히려 옹호하는데 급급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