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소방수’ 배드뱅크 계절 오나

입력 2010-08-18 21:44


금융권의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배드뱅크의 계절이 돌아오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현실화되는 데다 금리가 상승세로 방향을 잡은 가운데 그동안 미뤄졌던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부실채권 처리 기관과 은행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자칫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부실채권이 쏟아질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동산 PF 채권 인수, 2년 만에 8배=금융 당국 관계자는 18일 “조만간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의 부실채권 처리를 주도해온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바빠지게 됐다”며 “부동산 PF 부실과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동시에 처리해야 해 자칫 시장에 부담을 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부동산 경기 호황을 틈타 부동산 PF에 지나치게 많은 거품이 끼었는데 대응이 늦은 감이 있다”며 “어설픈 부동산 감정평가, 금융권의 안이한 심사가 겹쳐 있어 예상보다 규모도 크고 후유증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금융감독원 전수조사에 따르면 부동산 부실 PF 잔액 규모는 저축은행이 3조8000억원, 비저축은행(시중은행 포함)이 3조원 정도다. 금융 당국은 시중은행의 부실채권은 민간에 맡기는 대신 저축은행 부실채권 인수에 공적자금인 구조조정기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캠코는 기금과 일부 자체 자금으로 4조6580억원의 부실채권을 사들였다.

이는 캠코가 부동산 PF 대출 채권을 처음 인수한 2008년(5023억원)의 8배가 넘는 수치다. 당시에는 시중은행은 없고 모두 저축은행의 부실채권이었다. 부동산 경기가 워낙 호황이다 보니 부실 여부에 대한 별다른 시장의 시그널이 없었던 탓이다.

본격적으로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부동산 PF 부실 악몽이 시작됐다. 지난해 3월에는 캠코가 저축은행과 시중은행의 부실채권 2조580억원 상당을 인수했다. 시중은행 및 제2금융권은 6개월 뒤 다시 3029억원의 부실채권을 캠코에 매각했다.

◇금리 상승 속 중기 구조조정 나서야 할 판=6월 중간선거 일정 등으로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연기되면서 금리 상승기에 본격적인 기업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하는 점도 악재다. 이미 한은은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공언한 상황이다. 이처럼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 경우 한계기업들은 당장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김중수 한은 총재도 “가계와 중소기업의 체질 개선이 지연되지 않도록 통화정책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지난달 15일 “지난해 금융위기 당시 각종 지원책에 묻어갔던 역량 없는 기업들은 정리해야 할 시기가 됐다”며 보증지원 대상 기업 중 7000여개에 대한 구조조정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처럼 한계기업들이 시장 밖으로 퇴출될 경우 금융권의 부실채권 정리는 배드뱅크가 맡게 된다. 캠코의 경우 부동산 PF를 제외한 올해 상반기 부실채권 인수 실적은 1조4420억원(워크아웃 등 특별채권 280억원 포함)에 달한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연간 실적이 1조원 미만이었던 2004∼2007년은 물론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실적(2조3000억원, 부동산 PF 제외)도 뛰어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국민은행 등 6개 은행이 공동 출자해 마련한 민간 배드뱅크 ‘유암코’도 지난 5월까지 1조원 이상의 부실채권을 인수했다. 특히 출자은행들의 부실채권을 중점적으로 인수하고 있어 시중은행의 리스크 해소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만 부동산 PF의 경우 규모가 크고 다뤄본 경험이 없어 민간 배드뱅크가 뛰어들긴 무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정부가 자체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 시중은행의 부동산 PF 역시 종국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Key Word-배드뱅크(Bad Bank)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이나 채권만을 사들여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기관으로 흔히 금융권의 소방수로 비유된다. 한국의 경우 캠코가 정부 주도의 배드뱅크 기능을 수행하며 민간에서는 유암코, 우리F&I, 파인트리 등 6개사 운영되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