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은 경치는데 公僕후보는 사과하면 없던 일로… 위장전입 처벌 ‘이중잣대’
입력 2010-08-19 00:16
경기도 성남시 야탑동에 살던 윤모씨는 2006년 다른 지역의 한 빌라로 주소지를 옮겼다. 해당 지역에 개발이 예정돼 거주자에겐 택지와 이주비 보상이 이뤄진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법원은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윤씨에게 지난해 2월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 반포동의 김모씨 역시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시로 위장전입한 게 드러나 2008년 법원에서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위장전입(주민등록법 위반)이다. 주민등록법 37조 3항에는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에 관해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1970년부터 형사처벌이 이뤄진 위장전입은 75년부터 징역형이 추가됐다. 이들처럼 위장전입을 했다 기소돼 법정에 선 사람은 1년에 700여명이나 된다.
반면 고위 공직자에게 보다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위장전입의 잣대는 무력한 경우가 많다. 인사청문 과정에서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대부분 공소시효(2007년 말 이전 행위는 3년, 이후 5년)가 지나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 이러다보니 도덕성과 준법의식을 갖춰야 할 공직자들은 법을 위반하고도 청문회에 출석해 사과만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인복 대법관 후보자는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2006년 경기도 용인의 아파트를 분양받는 과정에서 위장전입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대법관 임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이귀남 법무부 장관, 김준규 검찰총장도 위장전입이 들통났지만 임명에는 문제가 없었다.
2005년 재경지검 검사였던 정모씨는 아들을 강남 8학군 고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위장전입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답안지 대필 소동으로 파문이 커져 예외적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자녀 진학 목적으로 위장전입을 했다면 부동산 투기 목적보다는 관례적으로 형사처벌 수위는 낮지만 이는 정식 재판에 회부됐을 경우에 한정된다. 약식 기소된 경우에는 위장전입의 동기와 개인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장관직 수행 도중 낙마하던 과거 정부와 달리 현 정부에서 위장전입이 ‘조그마한 흠집’ 정도로 여겨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2007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위장전입이 불거진 이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후 고위 공직자가 사과만 하면 별 탈 없이 지나가는 사례가 일반화되면서 급기야 관련 법 조항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런 논의는 주객이 전도된 시각이라는 견해가 많다. 정영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8일 “자녀 교육 문제를 이유로 위장전입을 봐주자는 것은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자꾸 어기는 고위 공직자가 많다고 법을 고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방희선 동국대 법대 교수는 “주민등록법이 개정된 지 오래 돼 자녀 교육 문제로 불가피하게 위장전입할 사정이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면서 “다만 포괄적으로 면죄부를 주기보다 엄격한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의근 김정현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