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韓銀의 신선한 채용실험
입력 2010-08-18 17:44
한국은행이 올해 정기 채용부터 지방대학 출신들을 20%까지 선발하기로 했다. 금년 채용 예정인원이 총 40명이라고 하니 8명이 지방대학 출신으로 채워지게 되는 셈이다. 최근 5년간 채용한 신입행원 가운데 지방대학 출신이 5명뿐이었음을 감안하면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획기적 발상의 배경에는 4개월 전 부임한 김중수 총재의 철학과 소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김 총재가 취임해서 살펴보니 인적 구성에서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 사실상 독점하더라는 것이다. 김 총재는 명문대 출신만 선호하고 득세하는 집단은 결코 발전할 수 없다며,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아예 지방 인재 채용목표제 도입을 지시했다고 한다.
한국은행에서 조직원의 출신 대학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은 2002년부터 재임했던 박승 총재였다. 그는 일부 명문대 출신이 독점하는 구도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기 위해 시·도별로 ‘지역경제전문직’ 제도를 신설, 해당 지역 대학 졸업자에게만 응시 자격을 주었다. 박 전 총재는 심지어 한은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연구조사를 토대로 대입에서 수능보다 내신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교 내신과 수능 성적이 대학 성적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수능 우수자보다 내신 우수자들이 대학에서 공부를 더 잘하더라는 것이다. 즉 서울 대치동과 목동 등 학원가 출신들이 명문대를 독점하는 대입 시스템부터 잘못됐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출신 대학과 직장 내 업무 성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실제로 직장에서 같이 일을 해보면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최고의 기업이라는 삼성전자가 신입사원 채용 시 아예 출신 학교를 보지 않고, 지방대 출신 임원도 대기업 중 가장 많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이고 맹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명문대 선호가 조직의 경쟁력을 떨어트리고,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붓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불러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김중수 총재는 “경제·경영학보다 문학, 사학, 철학을 잘하는 사람이 길게 보면 더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다”면서 채용 전형에서 논술 과목 배점을 배로 높였다고 한다. 김 총재의 이 같은 실험이 우리 중앙은행을 더욱 경쟁력 있는 조직으로 만들고, 타성에 젖은 우리 사회를 바꿔나가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