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즐거운 승부
입력 2010-08-18 21:11
지난 13일과 14일 부산에서 즐거운 승부가 펼쳐졌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부경바둑대회로 부산과 서울 출신 기사들을 각각 8명씩 초청해 대항전으로 치르는 승부다.
1991년 ‘더운 날씨에 함께 모여 바둑도 두고 바닷가에서 생선회 한 접시 하자’는 아주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한 부경바둑대회가 어느덧 20주년을 맞았다. 흥우산업의 이철승 회장(부산바둑협회 회장)과 바둑협회 회원들의 노고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부산사람들의 끈끈한 정과 훈훈한 마음을 느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대회지만 단지 친목도모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프로들이 모인 자리이다. 이런 곳에 가벼운 승부가 있겠는가? 승자와 패자의 차등 상금도 있어서 그런지 대회장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첫 대회에는 당시 도전 5강이라 불리던 장수영 서능욱 백성호 김수장 강훈 9단이 서울팀으로 초청되었고, 부산팀은 김일환 고 임선근 9단 외 부산출신 기사 4명으로 구성되어 명승부를 보여주었다. 1997년부터는 목진석 강지성 최철한 9단 등 젊은 기사들도 합류해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가 함께 하는 대회로 거듭났다.
올해 서울팀은 유창혁 9단이 가세해 양상국 정수현 서능욱 백성호 강훈 이홍렬 9단으로 꾸려졌고, 부산팀은 최철한 9단을 필두로 김일환 김영환 차수권 서무상과 부산 3인방인 김준영 장명환 김종준 4단으로 구성되었다.
2차전으로 진행되는 시합은 사실 3차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시합을 앞두고 13일에 부산에 모인 사람들은 자갈치시장의 명물 횟집에서 전야제를 한다. 오랜만에 만난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술 한 잔 기울이는데 이것이 어쩌면 부경바둑대회 최고의 묘미라 할 수 있다. 또 다음날 시합을 앞두고 반가움을 표하며 상대팀에게 한 잔 더 따라주는 센스. 바둑만큼 술도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2박3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오랜만에 수담을 나누고, 친구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살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 매년 손꼽아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이번 대항전은 1차전 6승2패, 2차전 4승4패로 종합전적 10승6패를 거둔 부산 팀의 승리. 어쩌면 후덕하게 대접해 준 주인에 대한 답례일지도 모르겠다. 한 평생 승부를 업으로 삼은 프로이기에 바둑을 더 즐기지 못하고, 승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들이다.
치열한 전장에서 적을 물리치던 용맹스러운 장군이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쓸쓸히 돌아서야하는 그 마음을 누가 알아주랴. 오직 한 시절 함께 했던 나의 벗, 나의 라이벌이 함께 하기에 위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승부가 아닐까.
<프로2단>